고점에 물린 당신

by 이백지

게으름과 가난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 IMF도 손대지 못한다.

퇴근 후 차를 주차하고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뛴다. 차량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건 당 5천 원 이하의 콜은 기름값, 시간, 주정차 위반 등의 요소를 고려하면 무료봉사 수준의 단가다. 음식 배달 업계뿐 아니라 퀵서비스 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단거리콜, 반나절콜을 필두로 건 당 2000원 짜리 배송금액도 즐비하다. 차량은 물론 오토바이로도 마진이 얼마 없는 장사다.

코로나19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자 물동량이 줄고 상대적으로 배송 업무를 하는 인원이 많아졌다. 단가가 낮아질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떤 이는 울며 겨자를 먹고, 또 어떤 이는 다시금 좋은 날이 올 거라 믿고 남아있다. 나는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PAS 자전거로 하루 1~3만 원을 벌고있다. 페달을 밟아야 건 당 3~4천 원을 벌 수 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알아?"
병원 실습 중인 아내는 얼마 전 실습 병원을 옮겼다. 바뀐 곳에서도 누군가의 텃새가 아니꼬왔던 모양이다.
"아니, 들어본 적 없는데. 인원 수가 적은 조직이나 외근직이 많은 직장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지 않을까?"
아내는 나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술잔에 소주와 맥주를 섞었다.

설거지를 하려하자 오늘은 당신이 아이들 씻기라며 아내가 말한다. 이틀 연속 아내가 아이를 씻겼는데 힘들었나 보다. 아이들을 씻기고 다시 옷을 입고 배달 일을 하러 가야겠다고 말하자 아내는 오늘은 나가지 말라고 한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말이다. 퇴근 후 12시까지 일반대행 업체에서 배달 일을 하는 회사 후배를 언급하며 본업의 수입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렸다. 이제는 저녁 식사 후에도 부업을 뛰러 나가야 산다고 일러두었다. 한다가 아니라 산다이다. 경기가 안 좋으면 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 된다.

아내는 경기가 안 좋은 걸 알고 있을까? 지난 주말에 배달 일을 하며 지나쳤던 강남역 인근 상권의 1층 공실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사태 때 급속도로 유동인구가 줄어들은 명동이나 동대문 상권의 추락 후 불패 신화로 군림했던 강남역 일대도 힘을 못쓰는 형국이다.

성공사례만 보아온 아내는 회사 후배 와이프가 네일샾 오픈을 위해 네일아트를 배우고 있다는 말에 가게를 차리기만 하면 대박이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포화상태의 시장에 진입하면 재미도 못보고 손해만 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고점에 물린 상태 말이다. 코로나 시기 많은 라이더들이 배달 업계가 호황이라며 오토바이를 구입해 시장에 진입했다. 초창기 진입했던 이들은 재미를 보았고 끝물에 진입한 이는 투자금도 반환하지 못한채 떠났다.

어디어디가 잘된다더라. 누가 무슨 일을 해서 얼마를 번다더라. 따위의 말들은 노동자를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인도한다. 수많은 오징어와 벌레들이 빛을 따라다니며 환상에 취할 때 누군가는 주식을 고점에 팔고 시장을 떠난다. 그리고 남아있는 자들은 옛날 잘되던 때를 그리워한다. 나 역시 90%넘게 빠진 코인을 가지고 있고, 퀵으로 경기도 하남에서 전라도 광주까지 다녀온 톨게이트 영수증과 음식 배달을 하며 끼어들기 블랙박스 단속 범칙금 고지서를 소지하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과오를 잊으면 다시 불빛에 홀린다. 내 비록 나이가 차 고점에 물려 결혼하였지만 맞벌이 하는 친구 녀석은 새벽에 디아블로 게임을 즐기며 산다 말하지만 나이 40이 넘으면 주변에서 월 천만 원을 벌던 천 원을 벌던 신경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충실히 살면 그만인 것이다.

"여자는 남자가 지켜줘야해"
아들은 이렇게 말했지만 아빠는 그 말을 수정해 주었다. 여자라 해서 남자가 꼭 지켜주지 않아도 돼. 각자 자신은 자신이 지키는 거지. 그런 배려심에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아빠는 칭찬해 주지 않았다. 그 건 길들여지는 거라고. 너 역시 겪어보면 알게 되겠지. 행운을 빌고 무운을 빌게!












아내의 자궁 바구니에 담은 상품군 중 전문 피커가 엄선한 1+1상품이 배송되어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








퇴근 후에도 햇빛이 축복하는 계절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의 은총이 이 아이에게 가득하기를 아빠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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