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희생 사회

by 이백지

더 이상 우리는 국가와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출산율 감소의 원인을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보는 시각과 SNS의 발달로 비교문화에 익숙한 세대들의 빠른 포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을 잠깐 사용하다 어플을 삭제한지 1년은 된 것 같다.

자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효했다. 동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이번 설날 세뱃돈으로 몇십만 원을 받았다며 자랑하는 녀석들은 가난한 동네의 뜨내기들이었다. 이제 결혼과 출산 역시 가진 것 중 하나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내 힘으로는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말이다.

결혼 상대의 요구는 이전부터 확실했다. 180cm 이하의 남성에게는 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다던 한 여성의 발언과 알렉스의 세족식을 바라본 이들의 기대치는 나이가 차도 기울지 않았다. 은행 대출이나 부모의 도움 없이는 결혼이란 문턱은 꽤나 높은 허들인 셈이다.

얼마전 아내가 소변을 보면서 샤워 중인 나에게 말했다.

"아이 낳고 몸이 급속도로 망가졌어. 요실금 증세도 시작됐거든."

출산은 자신의 몸을 거대하게 키웠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어떤 이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은채 평생을 지내기도 한다. 여성들에겐 출산의 공포가 DNA에 남아있는 것 같다. 요즈음 여성들은 출산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혼처럼 선택사항으로 여긴다. 내가 능력이 있으면 혼자 살아도 충분히 즐겁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결혼을 해서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학력 여성이 많아지면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부터 여성은 집에서 아이나 보는 존재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남자들은 자신의 안위마저 위태로운데 누군가를 책임지는 행위조차 무리수를 두는 행위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혼자 힘으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부호다. 더이상 예전처럼 남자의 경제력만으로 가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저성장 시대의 임금 유리천장에 다다른 셈이다. 맞벌이로 임금 유리천장을 뚫으면 출산 후 또다른 유리천장이 생긴다. 어떤 이는 딩크족으로 지내며 천장의 높이를 높여 생활하지만 또 어떤 이는 천장 대신 콘돔을 뚫고 또다른 층에 도달한다.


나를 비롯한 우리 아랫 세대들은 가난을 기피하려는 DNA가 있다. 결혼은 힘든 길이다. 두 사람 모두 생활력 있게 미래를 설계한다면 힘든 길임에도 함께 걸어갈 가치야 충분하겠지만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몸과 마음이 병들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상태가 되면 결혼생활은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햄스터처럼 쳇바퀴를 힘들게 뛰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한다. 출산이 여성의 몸에 리스크를 가한다면 결혼은 남성에게 리스크가 따른다. 실패한 결혼 생활은 위자료로 봉합해야 하고 세족식에 준하는 각종 요구들이 넘쳐난다. 외벌이여도 집안일은 공동으로 해야하고 아빠 성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아이를 더 우월한 존재인 여자가 이 한 몸 희생하여 낳아주기로 결심한다는 개념이 자리잡는다.


여자들의 희생 정신이 사라질수록 아이들의 울음 소리는 줄어들 것이다. 남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여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회,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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