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문을 두드린다. 키우던 개가 앞다리를 절뚝인다. 없는 살림에 애완견 두 마리는 사치다. 애초에 결혼을 하는 것부터가 자발적 가난으로의 진입을 의미했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아내는 지금도 변변치 않다. 결혼을 망설인 이유 역시 직장이 없던 아내가 계속 집을 직장처럼 여길까봐였는데 이제 근속년수도 꽤나 오래되었다.
아내가 실습으로 다니던 병원의 노동강도가 심해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른 병원으로 실습을 옮겨달라 했단다. 나 역시 아내와 맞지 않아 아버지와 장모님께 결혼 실습은 그만두고 싶다 말했었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되었고 서로 맞지 않아도 참으며 잘 살아보라 하셨다.
점심 시간에 들른 식당 한켠 TV에 나온 고딩엄빠 사연의 주인공은 추진력 있게 아이를 낳았다. 중학생 신분으로 출산 예정 일주일 전에 엄마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일주일 후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연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이혼의 추진력을 저렇게 진행했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배는 고픈데 아내는 쇼파에 누워있다. 아이들 짜장면을 끓이고 남은 잔챙이 면발과 국물로 저녁을 채우려던 찰라 둘째가 짜장면이 먹기 싫다고 한다. 둘째가 먹으려던 짜장면은 아빠의 몫이 되었다. 김에다 밥을 감싸 주어 먹게 하지만 아내는 별다른 반찬 준비를 하지 않는다. 단백질이 부족하다며 아이에게 치즈를 꺼내 먹으라 한다.
어제처럼 저녁 준비를 아내가 해도 설거지는 내 몫이고 오늘처럼 아이들 저녁을 내가 준비해도 설거지는 내 몫이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긴다. 어제도 오늘도 내가 씻긴다. 씻기고 나오면 집은 그대로이다. 아이들이 없는 틈에 이것 저것 집안 정리만 해도 좋을것을 아내는 집안일 미니멀리스트이다. 화장실에 수건이 없다. 건조기에서 꺼내두고 화장실로 옮겨두질 않은 탓이다. 아이들이 닦았던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았다. 피부가 더 뽀송해진 느낌은 아니고 이곳저곳 물기가 남아있다. 아내가 씻을동안 주방 바닥을 치우다 절뚝이며 다가오는 개가 보인다. 또 치료비가 깨지겠구나. 아직 1만 3천키로 탄 승합차의 엔진오일도 갈지 못했는데 개까지 다리를 절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다.
아파트 관리비는 음식배달 주급으로 처리했는데 아직 차량 보험료 할부 납부가 남아있어 퇴근 후에 투잡으로 배달 일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집에 들어오는데 막상 집에 들어오면 '자, 집안일' 하고 아이들을 맡기고 술 한 잔 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다.
내 마음의 무게는 아내의 몸무게쯤 되려나? 주말엔 또 아내가 약속을 잡았는지 밤 9시에 나가 술 한 잔 하고 온다 말한다. 함께 술을 마실 상대가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 그 시간이라 늦게 일정을 잡았단다. 자발적 가난은 배달음식을 시키는 횟수만큼 빠르게 찾아온다. 오늘도 주방에서 유통기한 1년~2년이 지난 소스와 레토르트 식품, 김, 다이어트 식품 등을 버렸다. 아내는 유통기한이 지난듯해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결혼이란 노예 생활은 참 고된 봉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