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통해 나를 발견한다. 엄마는 아들의 쉽게 토라지는 성향을 질색팔색한다. 잘못된 행동이나 언행에 대해 지적을 해주면 상대에 대해 반감이 생긴다. 이럴때 아들은 나처럼 아무런 대꾸없이 가만히 상대의 화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린다. 반면 딸은 엄마를 닮아 자신을 강하게 변호한다.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어 상대의 화를 진화해보려는 시도는 아이답지 않은 재주처럼 보인다. 사태 수습이 쉽지 않은 경우에도 자기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다. 아내는 아들의 꿍해있는 태도를 답답해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이가 갇혀있는 마음의 골목을 말이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들을 막힌 골목에서 꺼내주었다. 아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와 더 잘 어울릴줄 아는 존재이다. 나 역시 그렇다. 아내가 먼저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그로인해 가까워졌다. 그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중복 더위에 이사를 한 경험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었다. 내 경우 성향상 상대가 일하기 편하게 미리 배려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내가 너무 손해보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내의 경우 무리하거나 무례한 부탁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부탁하는 편이다. 아내의 결혼 요구가 그 중 하나였다.
'음, 이 건 좀 내 입장에서는 무례하게 느껴지는데'
일단 던지고 보는 타입의 아내는 생각보다 자신이 얻어가는 이득이 크다.
"오빠 나랑 결혼할 생각 없으면 그냥 헤어져요."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태생적 뻔뻔함은 나에게 없는 능력치였다. 이번 이사때도 각자의 성향이 잘 드러났다. 사전에 아내가 선택한 줄눈 색상이 밝은 색이어서 얼룩이 눈에 잘 보일 수도 있다는 시공업체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추천하신 색상으로 변경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타일 색상이 두 가지 톤으로 들어가있는 안방 화장실의 경우 작업하기 편하게 그냥 한 가지 색상으로 통일해 작업하라고 말씀드렸다. 물론 아내에게 처음 고른 색상에서 살짝 어두운 색으로 변경하였고, 그 색이 당신 마음에 안 들수도 있다고 언질해두었다.
'그냥 아내가 원하는 톤으로 갈 걸 그랬나?'
아침에 경비 아저씨 분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강씨 고집에 대한 말들이었다. 본인도 강씨이고, 이 아파트에도 몇 분 계시지만 강씨 딸을 아내로 둔 남편들이 대부분 허튼 짓을 못하고 산다는 이야기에 아내는 치를 떨었다.
"전 강씨가 아니어서 빠질게요."
아내의 성향은 인터넷 설치 기사 분의 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쪽 방이랑 저쪽 방 양쪽에 인터넷 선 작업 해주세요."
기사 분께서 잠시 설치 자재를 가지러 차에 다녀오는 사이 아내에게 물었다.
"왜? 컴퓨터 양쪽 방에 하나씩 두려고?"
"아니, 혹시 몰라서~"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다. 결혼을 하려거든 강씨 따님을 만나거나 자신의 성향과 다른 사람을 만나라. 내가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들을 아내는 숨쉬듯 편하게 말을 한다. 나는 기사 분께서 한 번 더 설치 자재를 가지러 다녀오는 노고를 알고 있기에 꺼내지 못하는 말을 아내는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그런 기질을 가진 아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례하고 싶지 않을때 아내가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고맙다. 엄마의 호된 꾸짖음에 "엄마 보고싶지 않아!"라고 귓속말을 하며 어린이집을 향한 아들은 반계탕 속살을 발라주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가끔 내게 말한다.
"왜 매번 나만 악역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