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요일, 화가 많은 날이다. 어제도 아내는 화가 났었고, 내일도 화가 치밀어 오를 예정이다. 임산부처럼 화의 배가 서서히 부풀어오른다. 분출 대상은 주로 남편이다. 남편은 다트판이 되어 작은 마음에 구멍이 여러 개 생겼다. 아내의 분노는 밥솥처럼 늘 취사 상태를 유지 중이다. 고밀도 에너지를 생산적인 일에 분출하면 좋을텐데 감정이라는 용광로는 끓거나 식는 두 가지 동작이 전부다.
수요일엔 물의 힘이 필요하다.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듯 말을 내뱉고 나면 마음의 방광이 한결 가벼워질까? 더 많은 단어들로 대화를 나누고싶지만 남편은 제한된 단어로 빡치게 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남편은 불침번 근무자처럼 다가와 아내와 임무교대를 하고자 한다.
'이제 당신 차례야.'
계주인줄 알았던 결혼생활은 바통이 없는 질주다. 집안 일을 넘겨주려해도 아내는 달리지 않는다. 아내는 늘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결혼 후 처음으로 취직을 한 아내는 피로를 씻어내려 술 한 잔도 기울여야 한다. 근무 중 확인하지 못했던 구독 채널의 업로드 근황도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 일정의 스트레스나 화남 게이지가 줄어든다. 충분한 휴식을 제공받지 못한 날은 일주일 내내 화요일이다.
'아, 네 바쁘시군요. 그래서 아내인가봐요. 전 남의 편이라 남편인데'
나는 육아휴직 후 가정주부가 되었다. 어릴적 꿈이 아빠일리 없듯 가정주부로 살아갈 것을 꿈꿔본적은 없다. 이번 달엔 차근차근 이사 준비도 하였다. 4년 전 이사때는 아내와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두고 혼자 이사를 진행했었는데 이번엔 아내의 손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바통이 보이지 않는다. 정으로 머리를 가격당한 느낌이다. 정은 나였고 부는 아내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살 수 있을까? 아내는 신혼여행때 구입했던 캐리어를 버리라고 하였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혹시 아이들을 다 키우고나면 가족여행을 갈 수 있겠지? 그러려면 캐리어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아이들 여행때 필요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 사람 일은 하루 밖도 모르는 법이니까.'
아내는 나에게 황혼이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혼에 떠날 여행을 상상 중이다. 이별여행이 될지는 모르지만 가방은 남겨두어 그 길고 긴 시간동안 무엇이 담길지 지켜봐야겠다. 나는 지난 이사 때 아내가 버리라 말했던 드론도 버리지 않았다. 혹시 나중에 여유가 되면 다시 드론을 가지고 놀 생각에 말이다. 얼마 전 아들이 내게 말했다. 유튜브에 나온 드론을 사고 싶다며 자기가 보았던 채널의 영상을 보여주며 경이로운 눈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각종 심부름과 착한 일을 하며 모은 3만 원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드론 사주세요."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무인 문방구에 들러 1500원 짜리 드론을 샀다. '아들, 인생은 실전이란다. 선입금은 위험해!'
나무에 물을 주어 서서히 가정이 자라는 중이다. 한 가정에 금이와 옥이가 태어났다. 비옥한 땅에 다시 아이들의 나무가 자라려면 아내와 나의 헌신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물을 주고 또 달도 보여줘야 한다. 희망, 또는 교훈의 달은 손 끝에 없다. 드론처럼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