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지 Oct 17. 2024

수박

"우리도 내년에 사립 초등학교 지원해 볼까?"

아내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당장 학습지 시작할 때만 해도 아직은 아이들 더 뛰어놀게 하고싶다 말한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뱉은 말은 우리집 재정상황에 힘입어 하루만에 무리라는 결정으로 돌아왔다.

"만약에 같은 비용이라면 아이 성장 호르몬 주사로 키 크게 해주고 싶어, 아니면 그 돈으로 아이 교육에 투자하고 싶어?"

내 질문에 아이 엄마는 키를 선택했다. 이번엔 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종교에 심취해 있던 동창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교회 전도사님이나 사역 하시는 분을 배우자로 만나면 하나님이 그 가정을 순탄하게 잘 인도해주실 거야. 목회 하시는 분이 최고의 신랑감이지."

여자는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하며 다만 악한 마음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맹신의 영역에 진입한 이들을 꺼내려 애쓰다 본인 또한 늪에 빠질 수 있다. 아내가 가끔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건 내 키가 170cm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아내는 인생의 실패자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본인이 직접 실패한 인생을 사는 나를 구제한다는 마음으로 결혼하자고 조른 건 아닐까? 아내의 태도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차은우 좋아해?"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언니가 말했다. 아직 연예인을 모르는 딸이 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듯 말했다. "응, 탕후루 좋아해" 아내와 딸의 관점은 달콤한 잘생김처럼 나와 다른 결이었다.




 나는 키보다 아이의 성장을 중요시 했고 아내는 외형적 성장이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인다고 여겼다. 아내는 삶을 통해 배운 것이다. 자신의 동기가 성형수술 후 길에서 번호를 묻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았다. 이기적인 성격의 친구가 남자들에게 인기있는 것을 보고 눈치챘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자신의 오빠였다. 일단 기준치 이상이 되어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내는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질적 풍요를 안겨다주는 남자는 존경할 수 있어도 그렇지 않은 이를 존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존경을 바란 건 아니다.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일머리가 없다고, 사회성이 부족해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멸시 좀 줄였으면 좋겠다. 내 키가 컸더라도 아내는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 관문인 재력으로 상대를 무시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전업주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의 행복의 기준을 보유한 차나 집의 평수가 아닌 '여름 수박은 달다' 정도쯤 되는 당연함의 씨앗이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가의 이전글 방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