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당장 학습지 시작할 때만 해도 아직은 아이들 더 뛰어놀게 하고싶다 말한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뱉은 말은 우리집 재정상황에 힘입어 하루만에 무리라는 결정으로 돌아왔다.
"만약에 같은 비용이라면 아이 성장 호르몬 주사로 키 크게 해주고 싶어, 아니면 그 돈으로 아이 교육에 투자하고 싶어?"
내 질문에 아이 엄마는 키를 선택했다. 이번엔 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종교에 심취해 있던 동창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교회 전도사님이나 사역 하시는 분을 배우자로 만나면 하나님이 그 가정을 순탄하게 잘 인도해주실 거야. 목회 하시는 분이 최고의 신랑감이지."
여자는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하며 다만 악한 마음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맹신의 영역에 진입한 이들을 꺼내려 애쓰다 본인 또한 늪에 빠질 수 있다. 아내가 가끔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건 내 키가 170cm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아내는 인생의 실패자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본인이 직접 실패한 인생을 사는 나를 구제한다는 마음으로 결혼하자고 조른 건 아닐까? 아내의 태도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차은우 좋아해?"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언니가 말했다. 아직 연예인을 모르는 딸이 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듯 말했다. "응, 탕후루 좋아해" 아내와 딸의 관점은 달콤한 잘생김처럼 나와 다른 결이었다.
나는 키보다 아이의 성장을 중요시 했고 아내는 외형적 성장이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인다고 여겼다. 아내는 삶을 통해 배운 것이다. 자신의 동기가 성형수술 후 길에서 번호를 묻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았다. 이기적인 성격의 친구가 남자들에게 인기있는 것을 보고 눈치챘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자신의 오빠였다. 일단 기준치 이상이 되어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내는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질적 풍요를 안겨다주는 남자는 존경할 수 있어도 그렇지 않은 이를 존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존경을 바란 건 아니다.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일머리가 없다고, 사회성이 부족해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멸시 좀 줄였으면 좋겠다. 내 키가 컸더라도 아내는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 관문인 재력으로 상대를 무시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전업주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의 행복의 기준을 보유한 차나 집의 평수가 아닌 '여름 수박은 달다' 정도쯤 되는 당연함의 씨앗이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