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영원의 교환일기 제 18편 _원에게

by 겨울

안녕 원.


네가 써준 취향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계속 끄덕였어. 요즘은 뭔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예전이랑 좀 다른 것 같아. 내가 찾아보기도 전에 알고리즘이 먼저 보여주잖아. 그래서 가끔은 이게 진짜 내 취향이 맞나 싶을 때도 있어.


그런데 어떤 후기나 정보도 없이 구매하는 게 가능할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고, 스치면서 끌리는 것들을 쌓아가니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확증편향>이 어쩌면 <내 취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랑 비슷한데, 내가 좋아하니까 "너 이거 좋아하지?"하고 추천해주다보니 "어 맞아."하며 스크린타임 시간이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내가 찾기도 전에 "이거도 좋아할 거 같지?"하고 건네줘. 근데 이상하게 "맞아..녀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거지. 이 과정이 묘하게 찝찝하고 내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확증편향은 내 취향인거야.


비슷한 것을 보다가, 비슷한 것에 끌리고, 그게 쌓이면서 점점 또렷해지는 것. 그게 바로 취향이잖아.

우리가 좋아하는 걸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만든거니, 이건 어쩌면 오류가 아니라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다른 점이 있다면 다양한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하게 된거지. 나의 취향이 너의 취향이 되어버리는, 연결의 세계에 살고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호접몽 같은..? (아우 이제 그만할게.)


어쨌든, 취향의 오류라고 말했던 원이의 이야기도 어쩌면

원이가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졌어.


아끼는 물건을 물어봤지. 한참 생각해봤는데, 난 물건엔 딱히 애착이 없더라. 그래도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면 지금 타고 있는 차. 엄마가 사준거라서 그런가 그냥 '차'라기 보다는, 엄마의 '시간과 노력'이 같이 들어있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알게 됐어. 나는 물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애착을 느끼는구나.


그래서인지 요즘 내가 제일 아끼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내가 생각하다 건져올린 문장들, 흩어져 있던 생각이 글로 정리된 순간, 그때의 느낌 같은 것들. 그런게 이상하게 더 애틋하더라.


근데 웃긴 건,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낀다'는 표현을 조심하게 돼. 나는 뭐든 금방 과해지는 편이라서 아끼기 시작하면 집착으로 번질 것 같거든. "이건 내 문장인데","이거 내가 생각한건데","이거 엄마의 소중한 노력이 들어간건데"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일부러 덜어내는 쪽으로 가려고 노력하지. 많이 가지는 것보다, 적당히 두는 것.

그런걸 '중용'이라고 하잖아.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 그게 내 추구미인 것 같아.


요즘 나는 좀 무기력한 것 같아. 작년까지 과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야. 시소를 탈 때 딱 수평을 맞추기가 정말 어렵잖아. 한 쪽으로 쏠린 것 같아서 다른 쪽에 무게를 두면 확 쏟아져버려. 지금은 무기력함에 무게추가 있는 것 같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자꾸 주변을 의식하게 돼. 그리고 그게 약간의 무기력함으로 이어지더라고.


얼마 전에 만났을 때, 밸런스게임에서 꼭 골라야 한다면 "아는게 힘이다"보다는 "모르는 게 약이다"를 고를거라고 내가 말했던 거 기억나?


2년 전에는 잘 몰랐거든. 그래서 더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근데 지금은 2년 전보다 아는 게 많아졌어. 어떤 길이 얼마나 더 어려운지, 누가 얼마나 더 잘하느지, 내가 어디쯤 있는지도 조금씩 보여. 신기하게도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자신 있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멈칫하게 되는거야.


모를 때는 그냥 올라가면 됐는데, 이제는 그 산을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든건지 알아버린거지. 정상에 올라가면 끝일 줄 알았는데, 거기서 보니까 또 올라갈 산들이 보이는 거지. 그걸 '안' 순간,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덜컥 겁이 나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2년 전에 비해 아는 건 많아졌지만, 용기는 더 없어졌어. 아는 게 많아지는 건 어쩌면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하는 일일지도 몰라. 초딩 땐 대통령되겠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닌 것 처럼말야.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반 초딩들이 지금의 나보다 더 용기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모르던 시절의 용기를 내려고 해.

중용을 잃으려고 할 때마다 내가 외치는 문장이 있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잘하든, 얼마나 멀리 가 있든,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한 걸음 내딛고 있더라고, 그게 얼마나 작은 발걸음일지는 덜 신경 쓸 수 있게 돼.


어쩌면 우리도 중용의 관계가 아닐까? 흙이 필요한 나와, 물이 필요한 네가 만나는거니까 !

다음에 만날 땐 원이의 결혼식 날이겠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를 보러, 너의 엘도라도가 간다 !

그날 보아.


총총.


- 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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