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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n 27. 2024

10. 엄마의 보호자

소금빛교회 박기주 목사님이 순진을 불렀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의자에 앉아서 설교만 듣다가 목사님을 직접 가까이에서 뵙는 것은 처음이었다.
똑똑똑!
순진은 목사님 방 앞에서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안에서 사무원인 듯한 젊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목사님 방은 바로 있지 않고 중간에 사무실 같은 방이 하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고등부 진순진인데요."
”어, 그래요. 어서 와요.”
여자 사무원은 전화기를 들고 말했다.
“진순진이라는 여학생이 왔습니다.”
“들여보내요.”
전화선을 타고 목사님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여사무원은 목사님 방문을 똑똑똑 노크하고는 방문을 열었다. 순진은 목사님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은 순진에게 소파를 가리켰다.

“자, 앉으세요.”

순진이 앉는 동안 목사님은 전화기를 들었다.

"4교구 이 목사님 내 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그러고는 박기주 목사님은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  병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순진에게 오렌지 주스 한 병을 따서 주고는 한 병은 들고 반대편 소파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순진 엄마가 속한 4교구 이 목사님이 들어서 목사님과 순진 사이 소파에 앉았다.

"자. 이 목사님, 순진이가 왔으니 함께 이야기 좀 나눕시다."

이 목사님도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박기주 목사님과 이 목사님은 순진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좀 많이 이상한 거 알고 있나요?”

“엄마가 집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순진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저기 1층에 쌓여 있는 거 전부 다 엄마가 담임 목사님한테 보낸 거예요. 알고 있었나요?”

목사님은 안타깝다는 듯이 순진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뇨. 전혀 몰랐어요.”

순진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얼굴이 불에 댄 것처럼 화끈거렸다.

“자, 마셔요.”

박기주 목사님은 말없이 천천히 오렌지 주스를 따서 마시면서 순진에게도 마시라고 손짓을 했다.

순진은 처음에 교회 1층 로비에 있는 물건들이 불우이웃 돕기에 쓸 물건들인 줄 알았다. 가끔 교회에서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불우이웃을 돕는다며 집에 있는 물건들을 기증하라는 미션을 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어서 그러나보다 했다. 독거노인들이나 소녀소녀 가장들에게 필요한 물품 품목을 적어 내라고 해서 성도들 집에 여분으로 있는 물품이나 새로 산 물품을 기증받아 전해 주는 방식이었다.

순진의 집에도 수건, 치약, 비누, 라면, 식용유 같은 생필품과 참치캔, 녹차, 커피, 쌀 같은 식품, 종합비타민, 루테인, 오메가3, 칼슘, 마그네슘, 콜라겐 등 영양제도 여유가 있었고, 지난번에 엄마가 건강보험을 들면서 사은품으로 받아놓은 에어프라이어와 전기오븐, 커피 분쇄기도 있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게 있었기 때문에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선물할 참이었다.

“목사님은 이제 은퇴가 딱 1년 남았어요. 목사님은 평생 사모님밖에 몰랐고, 여자문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 문제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소금빛교회 전체가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정말이지 조용히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어요!”

“......”

순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이 목사님과 순진이가 도와줘야 하는데 할 수 있지요?  목사님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큰 병원에 한 번 가보면 좋겠어요. 순진 아빠 진의현 집사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순진이와 의논할 일 없었을 텐데, 안타까워요. 순진이한테 이런 얘기를 하게 되어 정말 미안해요.”

“네.”

"언제 시간을 잡아 봐요. 내일이나 모레 어때요?"

이 목사님은 마음이 급했다. 연말이라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에 가뜩이나 바쁜데 일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었다.

순진은 자신이 좀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대답을 했다. 난데없이 엄마의 보호자가 된 순진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박기주 목사님 방을 나오는데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뒤가 당겨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순진을 미행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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