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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n 09. 2024

두 번째인데 전혀 새롭고 낯선 마니산

강화지맥 4구간 마니산

강화지맥 2구간부터 타기 시작해서 이번에는 4구간 차례이다. 그런데 대간, 정맥, 지맥, 그 어느 것도 걸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번 구간이 꽤나 부담이 되었다. 내 체력으로는 약 10km 내외가 적당하다. 10km 정도 걸으면 산행 후 후유증이 없지만, 15km 이상 걸으면 무릅도 다리도 허리도 뻐근하다. 그런데 이번 구간은 20km가 된다고 다. 더군다나 산을 3개나 넘는단다. 선답하신 알 대장님 사진을 꼼꼼히 훑어보니 진흙길에 가시밭길도 있다. 마니산도 5년 전 100대 명산 첫 구좌를 찍은 곳이기에 암릉과 계단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내 보폭대로 '느리게 천천히 꾸준히' 걷는다."


내가 세워 둔 기준에 맞게 마니산 구간만 타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선다. 차에서 내릴 즈음 질 대장님이 물어보니 미 대장님, 나 코모 대장, 키 님, 3명이다.

"어째 대장들이 다!"

질 대장님은 조금 서운하신 듯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자기 체력은 자기가 알아서 할 일다.


강화지맥 고정 회원들이 다 내리고 우리 '마니산' 팀은 조금 더 가서 마니산관광단지 입구에 내린다. 비가 조금씩 고 있어서 우비를 꺼내 입는다.

 

매표소를 통과해야 하는데, 입장료 2천 원을 받는다. 미 대장님이 내주신다.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매표소 옆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까 그래도 된다. 그렇지만 한참기다려도 비가 조금 가늘어졌을 뿐 여전히 내리고 있어서 우비를 입고 산행을 시작한다.


참성단 모형을 지나, 참성단 이정표를 따라 옛길로 들어선다. 이 길이 아무래도 마니산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코스 같다. 운무 속 멍석길, 데크길, 암릉길 지나 곧 참성단이 나온다. 하루 전 알 대장님은 참성단이 닫혀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열려 있다. 기쁘게 들어가서 제단을 보고 기념사진을 남긴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가 담겨서 숨 쉬고  있는 곳이다.


마니산 정상 표지목에서 또 기념샷을 남기고 조금 더 내려가 아늑한 밥터를 찾아 둘러앉는다. 미 대장님이 선임 대장님 답게 셋이 들어가서 앉을 만한, 아늑한 곳을 찾으셨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우리 앉은자리만 고요하다. 밥 먹을 때는 늘 조금 추운데, 오늘은 비까지 내려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도 춥다. 너무 얇은 걸 가져왔나 싶다.


우리들의 식탁은 완전 만찬이다. 쑥개떡, 영양쑥떡, 볶음밥, 김치, 시금치나물, 소라에 초장과 쌈장(미 대장님 특별식),  바나나, 버찌, 흰밥 등이다. 곡주는 미 대장님이 딱 한 병 가져오셨는데 꼭 겨울에 얼린 식혜처럼 얼음이 동동 떠 있다. 음식이 셋이 먹기에 조금 많다 싶었는데 천천히 먹으니 어느새 모두 다 먹었다.


이제 본격적인 암릉구간이다. 가끔 난 코스도 있다. 데크길 구간도 만만치 않다. 알 대장님 띠지를 따라가다가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 아닌 길로도 간다. 하얀 꽃이 눈에 들어와서 보니 산딸나무이다.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그런데 오리돈대로  가는 하산길이 너무 길다.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또 띠지가 붙어있고,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또 오름길이 있다.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한다. 마니산이 전혀 새롭게 낯설게 다가온다.


"산을 한두 번 타 보고는 산을 탔다고 말하지 말라."

음악선생님을 하시다가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하시고, 거의 매일 산에서 사신다는 산우님이 북한산만 500번 이상 탔다면서 하신 말이다.


그렇다. 마니산 한 번 타고, 두 번째 타니 전혀 다른 산이다.


마니산 산길이 여유롭고 긴 만큼 우리들의 이야기도 몇 구비를 넘는다. 초반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중간에는 취미와 해외원정산행에 대해서, 후반에는 연애에 대해서, 그리고 또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제법 깊이 있는 대화이다.


강화지맥 4구간(덕정산+진강산+마니산) 중에서 반을 포기하고, 반만 걸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것을 얻어간다.


강화지맥 4구간 전체구간을 타신 산우님들이 조금 힘들었던 모양이다. 길도 거칠고 긴 땡볕 논길에 시간 안배가 어려워서 거의 막바지에는 예정된 탑승 시간에 맞추려고 마음이 조급했던가 보다. 그래도 참 대단하다 여긴다. 당일 코스로 20km는 나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거리이다. 그 정도 거리이면 나는 늘 무박으로 산을 탔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 소요시간을 두고 자주 쉬어가면서 쉬엄쉬엄 걸었던 것이다.


하산해서 약 1시간 정도 기다린다. 동막 해변을 바라보며 강화니들길 돌계단에 앉아 쉰다.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마치 천연 에어견을 켠 거 같다. 물이 빠져 나간 갯벌에 들어가 뭔가를 캐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보인다. 어느새 물이 들어온다. 밀물 속에서 어린이 셋이 놀고 있다. 위험해 보인다. 나라면 안전하게 나오라고 했을 것 같은데, 요즘 엄마들은 그저 바라보며 사진 찍기 바쁘다.

"저러다 물살에 휩쓸리면 어쩌려고!"

끝내 입 밖으로 염려를 뱉고 만다.

밀물 때 물살은 순식간에 사람을 덮친다. 그런 사고를 본 적이 있어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다들 빠른 코스로 해서 내려 오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뒤풀이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고 강화지맥 4구간 마무리를 한다.


아, 주요 사항을 깜빡할 뻔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녹 대장님 임명장을 받았다. 강화지맥 팀에서 3명의 대장이 나왔다고 좋아들 하신다. 봉사회원으로 멋진 공지와 리딩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강화지맥 4구간 선두 리딩 질 대장님, 후미 백 대장님, 우리 세 사람 리딩 미 대장님, 딱 부러지는 송 총무님, 그리고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 감사하다. 그리고 선답 띠지 깔아주신 알 대장님은 더 많이 감사하다.

참성단에서 / 마니산 정상 표지목에서
강화지맥 4구간(덕정산+진강산+마니산) 알파산님들 단체사진(※우리 마니산만 팀은 먼저 걸어서 빠졌다.)
우리들의 점심 식사
운무 속 암릉길과 데크길
멋진 조망터에서
하루 전 선답자 알 대장님이 띠지가 떨어져서 다른 산악회 띠지에다 우리 알파를 써넣어서 우리가 우회해서 못 보았다는 멋진 분오리항 사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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