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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y 27. 2024

쉬엄쉬엄 하려다 대장 임명까지 받다

강화지맥 3구간 정족산+길상산

침 7시 10분 전, 사당 집결지에서 강화지맥 3구간 버스를 탔는데, 알파난다 회장님한테서 '전화통화하고 싶다'는 톡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나는 하루 전에 지인 두 분과 모락산 산행 한 거를 알파산 카페 개인자율산행 난에 올렸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산행 당일에 올려야 한다고 나온다. 밤에 올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막 자정이 지났다.

"이거 뭐야! 다 없어졌잖아?"

내가 올리려던 기록이 사라졌다. 엔터를 안 치고 그만 잠이 든 거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올리다 보니 시간 상으로는 다음 날이 되고 말았다.

"이거 당일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서 자율산행 인정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가?'

그래서 부랴부랴 강화지맥 3구간 가는 버스에서 내려서 전화를 해본다. 그런데 글쎄, 그게 아니다. 나보고 알파산에서 대장으로 봉사를 해달라는 이야기이다.


실은 내가 알파산에 가입을 한 건 산을 조금 더 쉬엄쉬엄 다니고 싶어서였는데, 뜻밖에도 그만 중책을 맡고 말았다. 매주 산행을 하는 나로서는 2번은 원정산행을 하고, 2번은 근교산행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근교산은 혼자라도 가는 상황인지라 누구라도 몇 명이 되든 산우님들과 같이 가면 더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을 하였다.


버스에 타자 질대장님이 나보고 신임대장 인사를 하란다.

"2% 부족할 때 수분을 채우듯이 산우님들과 함께 하면 가득 채워지리라"

그런 마음으로 기꺼이 인사를 한다.


나는 늘 그렇다. 일이 조금 어렵게 되는 것 같으면 그다음이 기대가 된다. 왜 '새옹지마' 내지는 '전화위복'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안 좋은 일은 곧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온다!"

나이가 조금씩 더 들어가니 자꾸 기력이 떨어진다. 작년 다르고 올해 또 다르다. 그렇지만 산행 강도를 줄이면서 더 즐기는 산행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100대 명산 완등을 위해 안내산악회에서 쉼 없이 달리는 때도 아니고, 영알 9봉을 향해 두 개, 세 개 봉우리를 꼭 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쉬엄쉬엄 도란도란 보폭이 맞는 산우님들과 재미나게 산행하면 되는 것이다.


알파산에 들어와 보니 대간과 정맥ᆞ지맥을 타는 산우님들은 엄청 산을 잘 타신다. 나는 이번 강화지맥이 지맥으로 걷는 것은 처음이라서 알파산 산우님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제가 느려서는요!'

산우님들에게 얘기를 하니, 그래도 가능하단다.


나는 주로 근교산 여러 번 가본 곳을 공지할 생각이다. 역시나 내 산행 모토대로 '느리게 천천히 꾸준히' 서로 누가 대장이랄 것 없이 '함께 걷는다'는 의미로 산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대장 수락은 했지만 또 대장 등극식을 해야 한단다. 오늘 리딩이신 질대장님이 일정을 함 맞춰 보자는데, 6월은 강화지맥 이어가는 날이 2번이고, 알파산 전체 정기산행도 있어서 날짜 맞추기가 쉽지 않다. 7월 역시 해외에 는 울 딸이 이번에 낳은 외손녀를 데리고 들어올 거라서 약 한 달 동안은 산행이 어려울 듯하다. 7월 말, 8월 초는 휴가철이라 다들 휴가를 가실 테고, 아마도 8월 중순은 넘어야 등극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장 되는 게 쉽지 않음을 실감한다. 늘 좋은 대장님들한테 은혜만 입다가 입장이 바뀌고 보니 그동안 리딩해주신 대장님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아, 그런데 대장 등극식은 빨리 해야 한대서 6월 초로 앞당겼다.)


강화지맥 2구간부터 동참해 보니 대간이나 지맥, 정맥은 산 타는 게 쉽지는 않다. 몇 개의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산을 오를 때는 초반에 조금 힘들게 올라가면 정상 찍은 후에는 대체로 내리막길인 경우가 많다. 나는 오르막길은 숨이 차서 힘들지만, 내리막길은 잘 가는 편이라서 초반에 조금 쳐져도 곧 따라잡는다. 그런데 지맥은 그게 안 된다. 내려가는가 싶으면 또 올라가야 한다. 오름길에 약해서 후미를 면치 못한다.


강화지맥 3구간은 정족산과 길상산을 오르는 구간이다. 정족산 오를 때도 작은 봉우리들 세 개를 먼저 지나간다. 봉우리마다 표지목에 명찰이 붙어 있다. 산 봉우리 이름, 산 높이 같은 것이 기록되어 있다. 나무에다 봉우리 표시를 하는 것을 가끔 보지만 볼 때마다 신기방기하다.

"여기가 봉우리인 걸 어찌 알았을까?"


강화지맥 3구간 산길은 대체로 사람 흔적이 그리 많지 않은 천연의 길이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곳이 많고  흙길에 가벼운 암릉구간이 조금씩 있다. 소나무들은 우람한 자태를 뽐내며 무지 지어 숲을 이루고,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하다. 오름길 걷다 보면 얼굴에 살짝 땀이 나지만 능선길 나오면 천연 냉장고 바람이 순식간에 땀을 식혀준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여기 자리 깔고 누워 한잠 자고 가면 좋겠구먼!"

산우님들 바람은 그렇지만 갈 길이 멀어 부지런히 걷는다.


사람 모양의 특이한 돌탑이 있는 곳에서 사군자님표 부침개와 겸아님표 멍게를 먹으며 쉬어간다.


지난 강화지맥 2구간부터 나는 달빛그네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는다. 내게는 언니뻘인데, 산을 참 잘 타신다. 나는 큰딸이라서 언니가 없는데 달빛 언니는 소곤소곤 다정하게 말동무도 해주신다.


아, 그런데, 오다가 그만 오래 사용하신 아끼는 손수건을 두고 오셨단다.

"이를 어째? 일행이 움직이고 있어서 뒤로 돌아가 가져올 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학교 심벌 문양이 새겨진 손수건을 드리겠다고 약속을 한다. 한두 번 사용한 것이긴 하지만 거의 새것이다. 5월 말에는 또 여고 개교기념행사가 있는데, 맘씨 고운 훈훈한 찬조금이 있어 참가자 모두에게 손수건을 선물해 준단다. 여고와 대학 거는 문양이 비슷해서 나는 그 어느 것을 사용해도 되기 때문이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름길, '발 뒤꿈치가 땅에 안 닿는다'는 알대장님 말처럼, 한바탕 힘든 오름길 치고 올라가 성벽을 두 손 짚고 올라간다. 삼랑성(정족산성) 정상이다. 거기서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송화님표 모둠쌈에 된장고추장볶음이다. 돼지고기 갈은 것을 마늘을 넣고 볶아서  청양고추, 견과류 등을 넣고 된장고추장에 버무린 거라는데, 고놈의 쌈장이 둘이 먹다가 다섯이 죽어도 모를 정도의 맛을 자랑한다. 모둠쌈 역시 송화님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이란다. 싱싱하다. 거기다가 삭힌 고추, 눈개승마 등 장아찌도 입맛을 개운하게 해 준다. 언제나 반찬 구성품 완벽하게 해 오시는 사군자님표 밑반찬들 반갑고, 또 오늘은 달빛나그네님 참치영양밥까지 별미 아닌 게 없다. 산우님들이  챙겨 오신 방울토마토, 참외, 청포도 등도 달고 맛나다.


이제 두 팀으로 나뉘어서 한 팀은 전등사 쪽으로, 한 팀은 성곽길 쪽으로 간다. 나는 성곽길을 따라 걷는데 조망이 시원하다. 오른쪽으로는 마니산을 조망하며 앞쪽으로는 강화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성곽길 옆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멋스럽다.


후미를 맡은 백대장님이 오늘 대장 임명받았다고 이모저모로 사진을 많이 남겨주셨다. 이야기는 주로 녹두님과 나누며 걷는다. 꽃에 관심이 많으신 남산우 님이시다.


참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오늘 정말 많은 꽃을 보았다. 초반에 만난 빨간 정열의 장미와 양귀비, 무덤가에 핀 키 큰 보라꽃 엉겅퀴에 수줍은 노란 원추리꽃, 그리고 산과 산을 이어주는 마을어귀 임도길마다 샤스타데이지, 살구빛이 나는 여왕 산딸나무, 샛노란 큰 금계국, 여리여리 분홍 찔레꽃, 천연의 숲 산길에서 만난 순결한 하얀 찔레꽃, 향이 짙은 아카시아꽃과 쥐똥나무꽃, 하얗게 꽃비 내린 때죽나무꽃, 연두연두 막 피어나고 있는 산 수국, 이름을 부르려니 끝이 없다. 메꽃, 붓꽃, 토끼풀, 애기똥풀, 꽃잔디, 인동초, 마삭줄, 측백나무, 청보리는 왜 내 이름은 안 불러주냐고 그럴 것  같다.


선두에서 리딩하시면서도 중요 지점마다 기다렸다가 회원  하나하나 챙기시며 사진을 찍어주시는 자상하신 질대장님, 산의 숨은 폰 사진작가 강지명님, 시간별 구간별 사진 기록을 남기시며 후미까지 맡아주시는 백화사 대장님, 이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는 그저 누리며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을 이어간다. 미리 선답해주시고 띠지 깔아주시고, 또 직접 산행길도 함께 해주신 알프스 대장님도 빼놓을 수 없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나는 '천천히 느리게 꾸준히'가 산행 모토라서 선두보다는 후미인 경우가 많다. 이번 강화지맥 3구간도 역시나 거의  후미에서 걸었다.


선두에서 빨리 걸어서 속도를 내주신 산우님들, 후미에서 보폭을 맞춰주신 산우님들도 두루두루 감사하다. 그대들이 있어야 산행이 이어지니까.


강화지맥 3구간 산행은 총 14km, 5시간 30분 소요(휴식시간 제외) 되었다.


뒤풀이는 <월송정>에서 돼지고기볶음으로 다. 이전에 주로 가던 맛집에 비해 다소 음식이 짜다는 평도 있었지만, 청국장, 도토리묵물무침 등 다양한 반찬에 돼지고기볶음뿐만 아니라 생선 등 모든 반찬이 리필이 되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사당에 내려 신임대장이라고 2차를 가자고 해서 질 대장님과 블랙에스님, 달빛님, 신임대장인 나, 넷이서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젊은 사람이 무지 많다. 2층은 만석이고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청포도 주스를 주문한다. 피자와 먹태구이도 시킨다. 안주가 무지 맛있다. 이 집이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일 듯 짐작해 본다.


한참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다가  블랙에스님이 근처에 사신다는 크석 대장님에게 전화를 했단다. 이러쿵저러쿵하니까 관악산 산행 마치고 3차 하고 집에 가고 있다며 '알았다' 하고 끊으셨단다.

"오신다는 거예요? 안 오신다는 거예요?"

나는 당연히 '오신다' 표를 던진다. 못 오시면 분명하게 '못 간다' 했을 거고 '알았다'는 '예스'의 의미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까 크석 대장님이 반갑게 웃으면서 들어오신다. 소시지와 감자튀김 안주 하나와 생맥주도 추가 주문한다. 나는 청포도 주스 얼음 남은 거에 물을 부어 마시면서  안주만 부지런히 집어 먹는다.

"아, 배 부르다."


대장님 가족사 이야기도 조금 듣고, 내 이야기도 나눈다. 질대장님과 쉬대장님에게 뒤풀이비 건과 정산 건에 대해서 블랙에스님과 내가 건의도 한다. 허심탄회한 대화이다. 술자리 대화는 격식이 없어서 좋다.


밥을 같이 먹으면 친해지고 술을 같이 마시면 더 친해진다. 산을 같이 타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 더더욱 친해진다. 회수가 잦을수록 친밀도가 깊어진다. 산행하는 이들이 성품이 좋은 이유랄까? 정기적으로 양적 질적으로 좋은 것들을 듬뿍 먹고 마시니까 말이다. 천연 숲길 피톤치드 뿜뿜 마시고, 밥과 고기를 먹어 산에서 소진한 에너지와 영양을 보충하고, 술술 술과 음료수를 마시며 아픈 상처 훌훌 이야기로 풀어내고, 그리고 다시 새롭게 한 주간의 첫날을 시작한다.


"부러우면 어서 오세요. 알파산악회로요."


"참, 살짝궁 나가셔서 '신임대장 축하'라고 2차비 계산해 주신 질대장님, 감사해요. 언젠가 은혜 갚을 날이 오겠죠! 담 강화지맥 구간에서 반갑게 또 뵈어요."

버스 안에서 신임대장 인사말
삼랑성 성벽 오르기
삼랑성 정상
삼랑성(정족산성) 성곽길
수북이 쌓인 낙엽길 가파른 오름길
길상산 정상에서
소나무숲 비단길
남문에서 단체사진
택리 바닷가
여왕 산딸나무
엉겅퀴와 원추리
붓콫과 아카시아꽃
때죽나무 꽃비
산 수국과 샤스타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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