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간 사람이 만들어낸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

by 서순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눈도 잘 안 보이고 걷기도 힘이 든다면, 점점 쇠약해져서 요양원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노년의 이야기이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보통 독특하고 난해한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 영화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따뜻하고 현실적인 영화로 꼽힌다고 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 사는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는 오랫동안 사이가 멀어진 형 라일 스트레이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시력이 나빠 운전을 할 수 없고, 돈도 많지 않다. 그래서 잔디깎이 기계(트랙터)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천천히 이동해서 형을 만나러 간다. 가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결국 형과 재회하게 된다.


이동 거리가 로렌스에서 위스콘신까지 397마일이라고 나오는데, 환산해 보면 639km이다. 출발은 아이오와 주 로렌스이고 도착은 위스콘신 주 마운트 자이언 근처, 형이 사는 곳이다. 639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약 325km의 거의 2배에 해당한다. 잔디깎이 기계로 이동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시간과 의지가 필요한 거리이다. 그래서 이 숫자는 단순한 거리보다 '천천히라도 끝까지 가는 인간의 의지'를 더 강하게 보여주는 설정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앨빈 스트레이트의 여정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고 한다. 실제 소요 기간은 약 6주 (대략 40~45일) 정도인데, 1994년 여름(7월 중순)에 출발해서 늦여름(8월 말)에 도착했다. 잔디깎이 기계(최고 속도 시간당 약 8km 정도)를 타고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쉬고, 사람들과 머물기도 하면서 천천히 이동한다. 하루에 평균 약 15~20km 정도씩 가지만, 날씨, 도로 상태, 건강 상태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비가 와서 피하기도 하고, 트랙터가 고장 나서 수리도 하고, 총 6주가 걸린다. 이 '6주'라는 시간은 단순한 이동 기간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 형에게 가는 ‘물리적 거리와 감정의 거리’를 함께 줄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빨리 도착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제대로 도착하려고 했다. 이 영화는 거리나 사건보다 ‘시간’ 자체가 메시지이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앨빈 스트레이트가 장작불 앞에서 뜻하지 않게 임신하고 가출한 소녀 히치하이커와 마주 보고 앉아서 나뭇가지 다발로 가족의 의미를 얘기하는 장면이다.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함께 묶어 놓으면 부러지지 않아. 그게 가족이지."

아침에 그 소녀는 나뭇가지를 다발로 묶어놓고 갔다. 아마도 가족에게로 돌아간 것 같다. 앨빈은 소녀에게 야단을 치지도 직접적으로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소녀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가족은 함께 있을 때 강해진다.”

소녀의 상황과도 대비된다 그 히치하이커 소녀는 원치 않은 임신, 가족과의 갈등, 도망치듯 떠난 상태이다. 즉 ‘가족으로부터 떨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앨빈의 이야기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그녀의 현재 삶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말이 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설교가 아니라 ‘전달’이다. 앨빈은 '돌아가라'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꾸짖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 뿐이다. 이게 이 영화의 전달 방식이다. '명상이 있는 영화', '시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 전달 방식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소녀가 떠난 뒤 남겨둔 나뭇가지 다발은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그건 아마도 앨빈의 말을 이해했다는 표시,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신호, 그리고 '나는 다시 연결을 생각해 보겠다'는 조용한 결심이 엿보인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영화 전체 주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앨빈은 형에게 가는 길(가족으로 돌아가는 여정)이고, 소녀는 가족을 떠난 상태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에 있지만, 같은 질문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묶여야 한다.”


오랜만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영화를 보았다. 나는 아프더라도, 잘 움직이지 못해도, 중단하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하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다.


형 라일과 동생 앨빈이 마지막으로 마주 앉는 장면도 비슷한 결의 울림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10여 년 동안이나 연락을 끊고 살았는지는 모른다. 가족들 간에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그만큼 잘 알아서 상처를 주고 적을 질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먼저 찾아간다는 것, 어렵고 힘들지만 화해를 청한다는 것, 그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값어치 있는 일이다. 형제는 둘 다 늙었고 아프다.

"이 땅에서 풀지 않는다면 어찌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까? 함께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화해가 아닐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부분 역시 코끝이 찡해진다.


명대사는 이렇다.

“가족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멀어져도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다.”

“늙는 건 힘들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여행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1. 화해와 용서

형과의 갈등을 풀기 위한 여정인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괜찮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느림의 가치

빠른 세상과 대비되는 ‘아주 느린 이동’의 미학으로 삶을 천천히 바라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3. 인간관계의 본질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을 통해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위로 받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4. 노년과 삶의 성찰

늙음, 후회, 기억,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인생 끝자락에서 돌아보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책 쓰는 일을 계속해 보리라 마음 먹는다.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 망설이고 있었지만, 모아둔 게 많으니까 '완성도보다는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언어로 이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다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시작은 선택 하나로 충분하다."

“느리게 가더라도,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간 사람이 만들어 낸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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