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깊이 있는 감정과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일본 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인데,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감독으로, 인간의 내면과 관계를 차분하고도 밀도 있게 그려내는 연출가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어둡게 처리된 한 여성의 긴 머리 부분 뒷모습과 함께 목소리로 시작된다. 화면이 밝아지고 넓어지면서 두 남녀의 베드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가후쿠와 오토 부부의 관계인지 아님 다른 남자와 오토의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본다면 잘 알 수 있으련만.
오토는 자신의 남편 가후쿠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남자를 번갈아 가면서 섹스를 한다. 그녀는 섹스 후에 떠오르는 생각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각본(연극의 이야기)을 쓴다. 남편 가후쿠는 아내 오토가 다른 남자를 집까지 데리고 와서 관계하는 걸 보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가후쿠와 오토 부부는 아이를 잃은 상처가 있다. 아내 오토는 그 상처를 겪은 후 연극배우를 하다 그만두고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각본의 아이디어는 섹스 후에 찾아온다.
어느 날 아내 오토는 남편 가후쿠에게 사실을 다 얘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잃을까 두려워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간다. 그날 아내는 병으로 죽어 있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가후쿠’는 이렇게 아내를 갑작스럽게 잃은 뒤 깊은 상실감 속에 살아간다.
2년 후, 그는 히로시마에서 연극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게 되며, 그곳에서 젊은 여성 운전기사 ‘미사키’를 만난다. 가후쿠는 늘 하던 습관대로 이동 중에 차 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들으며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미사키 역시 알코올중독자에 가정폭력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자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고통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감정 표현이 절제되어 있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대화’와 ‘침묵’이 동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극과 현실이 교차되며 인물의 내면을 비춘다. 인간의 상실, 죄책감, 용서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고 같은 시기에 섹스도 같이 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는 동물인 사람이 일반 동물과 다른 점이 뭘까? 동물들은 새끼를 번식시키기 위해서 그런다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애도 안 낳으면서 그저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섹스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하도 인기가 있다고 해서 몇 개 찾아서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너저분한 섹스 씬에 더 이상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아내는 남편과 자면서도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애인이 있는 여자는 이 남자 저 남자와 섹스를 전전하다가 자살을 하기도 한다. 대체로 자살하는 이들은 여성인 경우이다. 우리나라 꽤 유명한 작가 중에도 이런 비슷한 성향의 소설을 쓰는 이가 있다. 몇 개 읽다가 말았다.
그런 가치관이라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이혼도 필요하지가 않다. 외국처럼 사실혼주의로 그저 같이 살면 결혼이고, 안 살면 이혼이게 법을 만들면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랑도 미움도 질투도 다 사라질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남자의 갈빗대에서 여자가 나오고, 성경은 '서로 사랑하고 돕는 배필로서 둘이 한 몸을 이루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의 천생연분인 배필을 찾을 것이고, 찾으면 기뻐해서 결혼하고 한 몸이 될 것이다. 둘이 한 몸인데 반쪽을 빼앗기면 아프고 상처 받고, 그래서 다시 찾으려고 하는 건 당연하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내게 이런 질문을 남겼지만, '잘못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결말에 이른다. 정작 잘못한 사람은 가후쿠의 아내 오토이고, 미사키의 어머니인데, 두 사람은 다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인상적인 대사 몇 개를 추려본다.
“우리는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모르는 부분은 남는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안고 살아갈 수는 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결국 깨닫게 되는 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자기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대사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 무서운 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모르는 걸 두려워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자기감정, 죄책감,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 가후쿠도 아내와의 관계에서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들’을 뒤늦게 마주하게 되고, 미사키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가 마음속에 깊게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보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칸 영화제 각본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장장 3시간짜리 영화인데 지루한 줄 모르고 몰입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곳에서 치유는 일어난다. 치유가 있어야 우리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가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 내게 남는 이 깨달음을 곱씹으며 찬찬히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