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지만 역사에 남는 삶

영화 <왕과 나는 남자>를 보고

by 서순오

며칠 후면 울 아들 생일이라서 가족 외식을 한다. 울 딸은 외국에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지만 서울 사는 아들이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이때까지는 내가 집에서 해서 먹었는데, 한사코 울 아들이 말린다.

"엄마,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사 먹어요."

"그래. 알았다."


수원은 갈비로 유명하니까 <화성갈비>에 가서 점심 특선인 갈비살정식 먹고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러 가기로 한다.


오후 1시 아들이 집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는 씻고 옷도 다 입고 기다렸다가 바로 나간다. 미리 준비한 6년 근 홍삼즙 선물 2 상자를 쇼핑백에 담아 들려준다. 울 아들은 이런 거 좋아해서 자주 해주는 편이다. 울 아들 옷이나 신발 같은 거는 네덜란드에 사는 막내 고모가 최신형으로 최고 좋은 것으로 항상 보내주고 있어서 엄마인 나는 거의 신경을 안 쓴다. 그러고 보면 울 애들 대학 다닐 때부터 착한 고모들 덕분에 울 아들, 딸이 제법 사랑을 누리며 사는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갈비살 정식 3인분 주문했는데 밥과 된장찌개가 3개씩, 살짝 간만 되어 있는 갈비살이 나오는데, 노릇노릇 구워 먹으니 부드럽고 맛있다.


<메가박스> 영화관 가는 길에 보리 식빵 맛있는 집에서 흑미식빵과 중국 홍미식빵 2개를 사주고, 지동시장을 지나가면서 오징어젓갈 500g 1병을 사준다. 내가 음식을 만들면 이것저것 좀 싸줄 수도 있는데 오늘은 외식을 했기 때문에 몇 가지만 시장에서 사준 것이다.

"나는 먹는 거 사주는 게 제일 좋아요."

울 아들이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감사를 표현한다.

"뭐, 더 사려면 사. 삼겹살 같은 고기는 어때?"

"아뇨. 이만하면 됐어요."


<메가박스>에서 영화표 예매한 것을 30분 앞당겨서 바꾼다. 주전부리로 오징어와 팝콘 큰 거, 콜라 두 잔, 콤보 세트를 산다. 울 아들은 영화관에 오면 꼭 이런 걸 산다. 배가 불러도 영화관에서는 주전부리를 해야 영화 보는 재미가 있단다.


맨 뒷자리 3개가 우리 자리이다. 요즘 영화관 자리가 참 좋다. 등을 젖히고 다리를 쭈욱 뻗을 수 있게 의자 조절이 가능하다. 마치 집 거실 소파나 안방에 누워서 보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셋 다 등 쪽은 그대로 두고 다리만 뻗을 수 있게 의자를 높인다. 주전부리는 울 아들과 내 사이 의자 팔걸이 부분에 올려놓는다. 울 남편에게는 오징어와 팝콘만 조금 나눠준다. 나이가 들어가니 당 관리를 해야 한대서 콜라는 안 마시겠단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1,400만 관객이 관람했단다. 지금은 어느 정도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다. 우리는 좌석 없을까 봐 미리 가서 예매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겠다. 자리는 꽤 많이 남아있다. 나는 곧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를 여행할 예정이라서 사람들이 영화를 먼저 보고 가면 좋다고 해서 일부러 온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2026년에 개봉되었다.

조선 시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왕 단종(이홍위)과

그를 지키는 한 시골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단종은 권력 싸움 속에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로 쫓겨나게 된다. 이때 영월 청령포의 외진 마을의 촌장 엄흥도는 마을과 아이들을 더 잘 살게 하려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단종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두 사람은 신분과 나이를 넘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권력의 위협과 정치적 음모 속에서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부당한 권력에서 밀려난 왕과, 그를 끝까지 지키려는 한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영화를 보면서 권력보다 중요한 인간적인 의리, 약자를 지키려는 용기와 선택,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 역전 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왕이 백성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왕을 지키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왕과 사는 남자>를 한 마디로 요약해 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패를 알지만 저항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왕 단종이 ‘결과를 알면서도 선택하는 인간’으로 서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설사 이길 수 없다 하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저항이 역사를 바꾼다. 역사는 결국 누군가의 선택과 태도로 움직인다.


보통은 “이길 수 있을 때 싸운다”가 자연스러운 선택인데 단종 왕도 엄홍도도 질 걸 알면서도 끝까지 싸운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동시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이 말은 사실 단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엄흥도의 선택,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 이어지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성공을 향해 달리고 늘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그러나 성공이냐, 실패냐 보다도 그것이 의로운 것인가, 바른 것인가, 선한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큰 성공이라도 이와 반대되는 쪽이라면 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패할지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니다. 그러한 선택은 결국 역사가 성공이라고 명명해 줄 것이다. 당시에는 실패했을지라도 세월이 흐른 후에 단종과 엄흥도가 복위된 것처럼 말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AI가 만들어준, 엄흥도가 화살을 당겨 노산 단종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장면
수원 <화성갈비>에서 갈비살정식으로 가족 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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