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영화 <중경삼림>, 제목이 좀 낯설다. 검색해보니 '중경삼림 (重慶森林)'은 홍콩의 거대한 빌딩 숲인 ‘중경맨션’과 현대인이 느끼는 심리적 미궁을 뜻하는 ‘삼림’의 합성어로, 복잡한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영혼들의 엇갈린 인연을 상징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영화는 홍콩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 왕가위 작품이다. 그는 1958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서 홍콩에서 자랐다. 왕가위 감독은 감각적인 영상, 감정의 여백,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연출로 유명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감독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왕가위 감독이 만든 대표작이 <화양연화>, <아비정전>, <2046> 등이 있다고 해서 익숙한 사자성어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시절'이라는 뜻)' 때문에 눈이 갔다. 이 영화도 못 본 영화라서 꼭 한번 보고 싶다.
<중경삼림>은 홍콩의 복잡한 도시를 배경으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가 이어지는 옴니버스 영화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실연당한 젊은 경찰 223번이 주인공이다. 그는 매일 자기 생일인 5.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며 이별을 견딘다. 파인애플 통조림은 헤어진 여자가 좋아하는 것이다.
경찰 223번은 우연히 금발 가발을 쓴 의문의 여자와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사랑의 끝에서 느끼는 집착과 외로움이 중심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역시나 젊은 경찰 663번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 페이가 주인공이다. 경찰 663번은 스튜디어스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데 비행노선이 바뀌면서 헤어지게 된다. 경찰 663번의 옛 애인이 편지와 함께 보내온 열쇠를 페이가 가지게 되면서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집안과 삶을 바꿔 놓는다. 경찰 663번은 점점 페이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서툴지만 따뜻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스튜디어스 복을 입고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페이가 경찰 663번에게 비행기표를 그려주는 장면, 함께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그들의 사랑이 현재로. 미래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연은 곧 사랑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영화 <중경삼림>은 홍콩의 밤거리와 도시 감성이 매력적이다.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을까?”
철학적 질문과 함께 음악과 영상이 만드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California Dreamin” 같은 음악이 반복되면서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과, 그 안에 남는 감정에 대한 영화'라고나 할까? 대사는 많지 않지만, 짧고 시적인 문장들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인상적인 명대사를 적어본다.
1.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는 만 년으로 하고 싶다.”
2.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누군가와는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3. “그날 이후로 나는 파인애플을 좋아하게 됐다.”
4.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뀐다.”
5. “내 방이 울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중경삼림>을 보면서 스쳐 지나간 사랑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소년소녀 시절 첫사랑에서부터 지금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깊이 몰두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사랑이다.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헌신의 사랑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잘 온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빼앗으려고 했다면 하나도 제대로 갖지 못했을 지 모른다. 계속 주려고 했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 페이의 사랑처럼 말이다. 몰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그가 알아보고 눈치 챌 때까지 기다리는 사랑, 결국 페이는 경찰 663번의 마음을 얻고 사랑도 하게 된다.
"사랑은 유통기한이 없다."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사랑이 끝난다 해도 나의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사랑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그녀)와 헤어진 것은 아마도 우리의 더 뜨거운 사랑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