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 없는 소녀>
수원미디어센터에서 상영하는 영화 <말없는 소녀>를 보러 간다. 집에서 수원미디어센터까지는 도보로 40여 분 거리이다. 가는 길에 수원전통시장을 지나간다. 10여 개가 한 곳에 몰려 있지만 지동시장, 미나리꽝시장, 남문시장 등을 두루 돌아보면서 천천히 간다. 곧 문을 닫는 시간이라 야채 가게들이 떨이를 하고 있다. 커다란 단호박 3개, 깻잎 반 상자, 오이, 가지 등을 사서 백팩에 넣는다. 다 합쳐서 총금액이 1만 2천 원이다. 꽤나 무겁다. 요즘 단호박죽이 먹고 싶었기에 통팥과 찹쌀을 넣어서 내일 아침에 끓여야겠다. 깻잎은 2/3 정도는 장아찌를 만들고, 일부는 김밥 쌀 때 넣고, 고기 구워서 싸 먹고, 튀김도 해 먹으면 좋겠다.
저녁 6시 30분이 막 지난 시간이라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아 수원화성성곽길로 가기로 한다. 남수문 지나 동남각루로 올라간다. 첨탑이 고풍스러운 수원제일교회 십자가에 불이 들어와 반짝이고, 오늘도 창룡문 쪽에 열기구가 떠 있다. 동2포루, 봉돈을 지나간다. 팔달산 위 서장대 쪽에는 이제 막 해가 지고 있는지 석양이 물들고 있다. 하늘이 불그스름하다. 서장대는 아주 작게 보이는데 확대해서 보면 또렷하다.
나무 위의 새집도 담고 동2포루 사이와 봉돈 사이로 열기구도 담아본다. 한옥숙박시설 남수헌을 지나 수원미디어센터 쪽으로 내려간다. 수원화성성곽길의 지극히 짧은 일부인 이 길은 평지 같은 길이지만 오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좀 높거나 숲길이라면 저녁시간에 여기로 가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수원미디어센터에 도착하니 20여 분 여유가 있다. 예약 체크하고 1층 로비에 앉아 드림 라이트 <빛의 기원>과 <수원의 서재, 책가도>를 또 본다. <빛의 기원>이 끝나자 수원시 표어 "수원을 새롭게 시민을 빛나게"가 펼쳐진다.
영화 <말 없는 소녀>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아일랜드가 배경이다. 가난한 집, 아이가 많은 가정의 천덕꾸러기 한 소녀가 여름 방학에 친척집에 맡겨지는데, 그곳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는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이 있는 그 부부는 아들 방에 소녀를 재우고 아들 옷도 입힌다. 나중에 소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부의 아픔도 함께 나눈다. 가족보다도 더 포근한 사랑을 나누는 이 만남은 방학이 끝나면서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헤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소녀는 자기를 데려다주고 떠나는 두 부부에게 달려가 안긴다. 소녀는 자기 아빠를 보면서, 잠시 함께 했던 친척에게도 똑같이 "아빠"라고 부른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하게 된다. 가족이란 피를 나눈 혈육인가 보다도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소설 <맡겨진 소녀>를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더 생생하게 이미지가 남는다. 말이 없는 소녀의 우울함이 조금씩 밝은 톤으로 바뀌면서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돌봄과 사랑이 소녀를 안에서 밖으로 이끌어낸다. 아일랜드 시골의 가로수 키 큰 나무들과 마르지 않는 샘과 고목, 농장과 목장 등 배경이 소녀를 더 자연스럽게 치유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말없이 사람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과 자연의 치유가 함께 하는 한 고치지 못할 병은 없을 듯하다.
늘 좋은 영화를 골라 상영해 주시는 수원미디어센터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 이런 좋은 문화시설이 있는 수원에 살고 있어서 큰 복이라 여긴다. 더군다나 도보 가능한 거리에 있어서 자주 이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있겠는가! 늘 애용하며 듬뿍 사랑을 누리고 또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