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여행(1)
수선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이다. 수선화와 코스모스 꽃을 좋아하는데 둘 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수선화나 코스모스를 보면 괜히 더 반갑고, 마음이 오래 머문다.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꼭 보러 가는데, 봄에 수선화를 보러 온 건 처음이다.
수선화는 4윌 중순쯤 가야 좋다고 해서 노란 수선화로 유명한 서산 유기방 가옥에 갔다. 꽃샘추위라 날씨는 무척 추웠지만 봄기운이 막 올라오던 날, 노란 꽃들이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아이디로만 늘 내 곁에 두고 있던 ‘수선화’를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니, 익숙한 이름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저 예쁜 꽃을 넘어서,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풍경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 냇가와 저수지 물가에서 몇 송이씩 만나던 수선화와는 전혀 다른 수만 송이 무리 지어 피어있는 노오란 수선화 꽃들은 흥겨운 꽃잔치를 벌이는 듯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유기방 가옥은 조선 후기 양반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통 가옥이다. 뒤로는 산이 감싸고 있고, 집 전체는 흙담이 ‘U’ 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로 둘러싸고 있어서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곳은 공간이 남성과 여성의 생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동쪽에는 사랑채가, 서쪽에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두 공간은 흙담으로 구분되어 있다. 안채는 ‘ㅁ’ 자 구조로 부엌과 대청마루, 안방 등이 모여 있어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잘 보여준다. 뒤뜰에는 장독대가 있는데, 장독을 올려놓기 위해 돌을 촘촘히 박아 만든 모습이 특히 눈길을 끈다.
나는 뒤뜰 장독가 있는 곳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다. 장독대 뒤로도 수선화 꽃이 피어 있어서 꽤 멋진 사진이 연출되어 나온다.
유기방 가옥은 원래 안채 앞에는 중문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1980년대에 철거되고 현재는 목조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안채 왼쪽에는 행랑채가 있고, 가운데 방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어 예전 생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뒤쪽 물길 위를 지나가도록 만든 굴뚝도 이 집의 독특한 특징이다. 사랑채는 ‘ㄱ’ 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문을 들어 올리면 마루와 방을 하나의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앞쪽에는 ‘ㅁ’ 자 형태의 문간채가 있어 마당을 둘러싸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유기방 가옥은 전형적인 양반가의 구조를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주거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곳이다. 잘 보존된 덕분에 그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서산 유기방 가옥을 둘러보면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수선화 풍경이었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이곳은 구역별로 나뉘어 있어 천천히 걸으며 꽃을 감상하기 좋았다. 수선화는 보통 3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봄 날씨와 기온에 따라 꽃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서, 방문 시기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내가 갔을 때도 이미 꽤 많이 피어 있었고, 노란 꽃들이 언덕을 가득 채운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특히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안내판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촬영 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드라마와 같은 공간에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수선화가 가득한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단순히 꽃을 보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자연 풍경과 한옥, 그리고 드라마의 분위기까지 어우러져 있어서 한층 더 특별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수선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나르시스’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나르시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미모에 반해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물가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나르시시즘(자기애)'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수선화의 꽃말에는 ‘자기애’, ‘자존’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한 이야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돌아보게 만드는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자존심 같은 것,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노란 수선화가 가득한 풍경 속에 서 있으니, 단순히 봄꽃을 보는 기분을 넘어 나 자신을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꽃, 그리고 나를 닮은 이름처럼 느껴지는 ‘수선화’는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풍경이 되었다.
수선화 동산을 이리저리 산책길을 따라 걷고 캐리커처 그려주는 곳, 다육원, 수선화 그네, 수선화 꽃 파는 곳, 꽃 구근 파는 곳, 수선화 제품 파는 곳, 플리마켓을 지나 밖으로 나온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이것저것 장을 봐도 좋겠다 싶었다. 기념으로 수선화꽃 핸드폰 고리를 하나 살까 하다가 그만둔다. 돌로 만든 수선화꽃이 조금 무거울 듯해서이다.
동부시장으로 이동해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동부시장은 서산시청 근처이다. 그러고 보니까 시청 뒤쪽에서 횟집을 크게 했던 고향 후배 생각이 난다. 거기에 와서 거하게 회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무엇을 먹을까? 그래도 서산에 왔으니까 해물 종류가 좋겠다."
시장 쪽으로 가다가 내 앞쪽 자리에 앉은 분들을 만난다.
"같이 먹어요."
"네."
내가 혼자 온 걸 알고 여자분 둘이 말을 건다. 친자매란다. 그런데 두 살 차이라는데, 어째 둘이 뒤바뀐 것 같다. 언니가 동생 같고 동생이 언니 같다. 세상에 70살, 72살이라는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 요즘 겉으로 봐서는 절대 나이를 모른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동부시장 음식점 중에 1호점부터 4호점까지 냈다는 집이 있다. <맛있게 먹는 날>이다. 그 집 1호점 앞에 줄이 길다.
"맛있는 집은 사람이 많아요."
우리도 그 집 앞에 줄을 선다. 한참 기다린 후에 들어가서 보니 음식값이 꽤 나간다. 바로 옆에 앉은 젊은 여자분 둘이 먹는 걸 보니 맛있어 보여 물어보니까 아나고와 쭈꾸미 반반볶음이라는데 8만 5천 원이란다. 나중에 보니까 둘이서 그걸 다 먹고 밥도 또 볶아 먹는다. 볶음밥은 한 공기에 2천 원이다.
우리는 셋이서 아나고와 낙지볶음(중)을 주문한다. 6만 5천원이란다. 얼큰하니 삼삼하니 깻잎에 싸 먹으니까 맛이 있다. 양도 셋이 먹기에 적당하다. 다 먹고 공깃밥을 2개 볶아 먹는다. 합이 6만 9천 원이다. 셋이서 나누니 나는 2만 3천 원을 낸다. 점심은 1만 원짜리가 적당한데 좀 과했다. 서산 여행은 지자체 지원 상품이라 영수증을 챙겨서 가이드님한테 내야 하는데 계산한 이가 깜빡하고 안 챙겨 왔다.
"할 수 없죠 뭐!"
가이드님은 괜찮다 하신다.
줄을 선 데다가 음식 먹는 시간이 길어 1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좀 길다 했는데 그게 아니다. 동부시장 돌아볼 틈도 없다.
차 안으로 들어오니 내 옆자리 짝꿍은 무얼 잔뜩 사 왔다.
"시장이 무척 큰 데요."
나는 궁금하지 않아서 뭘 샀는지 안 물어본다. 돌아보면 나도 또 뭘 샀을 텐데, 엊그제 우리 수원 전통시장 들러서 필요한 건 거의 다 샀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었다면 그냥 동부시장 구경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