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만석공원 벚꽃 꽃비 내리는 날

수원 만석공원 둘레길

by 서순오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수원 살아서 만석공원은 혼자서도 갈 수 있는 곳인데, 그래도 내가 가입한 산악회 사람들 몇 명이 온다 하기에 시간 비워놓았다가 나갔다. 집에서 도보와 버스 포함 40여 분 거리이다.


그런데 만남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후 3시 약속에 2시 50분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 오는 사람도 없고, 카페 공지를 살펴봐도 어디로 간다는 댓글도 없다. 하필 오늘따라 옷도 얇게 입고 나가서 덜덜 떨면서 30여 분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참 이상도 하네!"

공지한 이에게 문자를 보내도 답문이 없다. 그래서 추워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기다리다가 공지한 사람한테 전화를 한다. 글쎄, 2시 20분에 만나서 벌써 한 바퀴 다 돌았다 한다.


"지금 <OO통닭>에 와 있으니 이리로 오세요."

첫 공지라 잘 몰랐다며 이러고 말을 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투덜댄다.

"그러면 한 사람이라도 약속 시간에 집결지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닌가? 끼리끼리 만나서 갈 거면 신청 댓글은 뭐 하러 받고 시간 약속은 또 왜 하는 거래?"


<OO통닭> 검색을 해보니 우리 집에서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만석공원에서는 또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거기로 가면 만석공원 벚꽃 구경은 하기가 어렵겠다. 이따 저녁 7시에는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말이다.


남산우님 한분이 늦게 통닭집에 도착했다며 또 전화로 그쪽으로 오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술도 못 먹는 데다 지금 벚꽃 보러 나왔지 통닭 먹으러 온 게 아니라서 안 간다 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서 기분도 무지 나쁘다.


그리하여 혼자서 아주 유유자적 여유 있게 만석공원 한 바퀴 돌고, 벚꽃 꽃비 내리는 날 기념을 제대로 했다. 봄이 무르익은 날에 멋진 벚꽃 풍경을 실컷 즐겼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이건 내 지론이라서 암튼 공지 덕분에 만석공원 벚꽃 꽃비를 제대로 맞았으니 감사하다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림 같은 호수와 벚꽃과 노는 사이 기분은 어느새 다 풀어졌다.


버스 타고 수원화성에 내려 수원미디어센티 가는 길에 저녁식사로 청국장 한 그릇 사 먹는다. 스티븐 호킹의 러브 스토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까지 보고 오니 넘 뿌듯하다. 영화가 수작이다. 정상인이었다가 장애가 생겨서 2년밖에 못 산다는 천재 물리학자에게 꽂힌 한 여인의 사랑은 자녀를 3명이나 낳고 더 오래 이어진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 고백할 수 있겠다.


밤 9시 30분 집 도착! 오늘 공지하신 분이 '미안하다'라고 문자를 보내셨던데, 그러실 거 없.

"공지 덕분에 만석공원 벚꽃을 혼자서 잘 누리고 왔요."

답문을 보냈다. 내일은 서산여행으로 수선화를 보러 가니까 곧 자야겠다.


그런데 쉬 잠이 안 온다. 누워서 하루를 돌아보니 ​비 온 뒤 날씨는 살짝 흐리고 추웠만 아무리 꽃샘추위라 해도 봄은 봄이다! 팝콘처럼 터진 벚꽃과 바닥에 수북이 쌓인 꽃잎,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흰 눈처럼 흩날리는 꽃비, 호수 안의 섬과 물 위에 동동 뜬 꽃잎들, 활짝 핀 꽃을 한 가득 달고 늘어진 가지에 눈을 팔며 벚꽃길을 따라 걷기 좋은 수원의 명소, '만석거(萬石渠)'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곳은 2년 전에 만석시립미술관에서 문인화 전시회를 할 때 한 번 돌아보았다. 그때는 풍경만 보고 가을 단풍 구경을 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가보니 그곳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역사와 세계적인 가치가 있었다. 직접 찍어온 안내판 내용을 읽어보니 만석거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다.



<정조의 애민 정신이 깃든 '만석거', 세계가 인정한 관개시설물 유산>


​1. 정조 대왕의 농업 개혁, 그 시작점


​만석거는 1795년(정조 19),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가 수원화성을 건립할 당시 함께 조성한 저수지이다.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받자, 정조는 성곽 공사를 잠시 멈추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혁신적인 수리시설을 만들라고 했다.


​단 2개월 반 만에 완공된 이 저수지 덕분에 인근 황무지는 국영농장인 '대유둔'으로 탈바꿈했고, 백성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2. 세계가 인정한 우리 유산 (ICID 등재)


​놀랍게도 만석거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 ​당대 최신 기술인 수구(수위 유지)와 수갑(유량 조절) 시설이 도입되었다는 점

2. ​식량 생산과 농업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


​이런 역사적 중요성 덕분에 김제 벽골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유산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니, 새삼 다르게 보인다.


​3. 풍경 속에 담긴 여유, '영화정'과 연꽃


​예부터 만석거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단다. 정조는 저수지를 만들 때 백성들을 위한 기능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남쪽 언덕에 '영화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풍경을 감상하게 하고, 저수지에는 연꽃을 심어 운치를 더했다.


​지금은 만석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소중한 쉼터가 되었지만, 안내판 속 옛 그림(화성성역의궤, 한글본 정리의궤)을 보면 당시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금 만석거는 벚꽃이 한창이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을 밟으며 저수지 한 바퀴(약 1.3km)를 돌다 보면, 230여 년 전 백성들을 아끼던 정조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역사 공부도 하고, 예쁜 사진도 남길 수 있는 곳! 이번 주말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만석거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위치: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만석공원 내)


이곳에 올린 안내판에 적힌 역사 이야기를 미리 읽고 걸으면 풍경이 훨씬 깊이 있게 다가올 것이다.

포토존
만석공원 둘레길 벚꽃 꽃비 내리는 날
벚꽃 꽃비
만석공원 둘레길 꽃비를 맞으며
만석거와 만석거 둘레길 안내
걷기 흙향기 맨발길(만석공원) 안내
청국장으로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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