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의 피봇 스토리
띵-
아침 9시 즈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슬랙을 켰다.
화면 가득 채워진 채널들, 새벽에 온 메시지들, 그리고 어제의 대화 내역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이 풍경이 한때는 누군가의 '실패작'이었다는 게 참 재미있다.
카카오톡도 아닌 슬랙이. 기업용 메신저가 이렇게 일상이 될 줄은 몰랐는데.
실리콘밸리에서 게임 회사를 차린다는 건 로또에 도전하는 거나 다름없다. 근데 이 사람들, 듣기에도 재미 없어 보이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했다.
결과는? 뻔했다.
이 게임은 출시됐다가 겨우 1년을 버티고 빠르게 문을 닫았다.
나도 한때는 대단한 걸 만들고 싶었다. 세상을 바꿀 것 같았던 블록체인 디파이와 프로토콜.
지금 생각하면 민망할 정도로 순진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될 것 같았는데.
같은 결과라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둘 다 망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시작된다.
그때 내가 만든 서비스는 접었지만, 그 과정에서 만든 작은 데이터 분석 툴은 아직도 쓰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엑셀 매크로랑 파이썬 스크립트 몇 줄로 만든 자동화 도구. 근데 이상하게 이게 살아남았다.
슬랙팀도 마찬가지였다. 게임 개발하면서 팀원들끼리 소통하려고 만든 채팅 도구가 있었다. IRC 기반에 검색도 되고 파일 공유도 되는. 이게 의외로 꽤 쓸만했던 거다.
"다른 개발팀들도 이런 도구 필요하지 않을까?"
1. 기본에 충실했다
이메일, 캘린더, 주소록처럼 기본적인 업무 도구들과 잘 연동
채팅, 파일 공유, 검색 기능의 완벽한 조화
초기 개발자들이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기능들을 정확히 구현
2.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메일을 대체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채널 기반으로 주제별 대화가 가능한 구조
업무 히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쌓이는 구조
슬랙을 쓰다보면 너무 직관적이어서, 전에는 진짜 이런게 없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규모가 큰 회사에서 재직할 때는 사내 인트라넷이 따로 있었지만, 현재 슬랙은 그 보다도 훨씬 직관적이고 활용도가 높다.
큰 공을 들인 게임은 망했는데, 그 과정에서 만든 사내 메신저가 대박이 났다.
이게 바로 실리콘밸리식 피봇의 진수인 것 같다.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보다는, 시장의 실제 니즈를 발견하고 빠르게 방향을 전환한 게 주효했다. 스타트업을 하는 지금도 나는 이게 스타트업의 모든 것인 것 같다.
매일 아침 슬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지금,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의도한 성공보다 때로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예상치 못한 기회가 더 큰 성공을 만들어내는 걸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