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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Apr 15. 2023

다음 발걸음을 떠올리다. - 2034년 4월 14일

AI와의 공존

People #1, 2034년 4월 14일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이면 난 60세가 되고, 기나긴 시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정년퇴직을 나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지만 막상 그때가 다가오니 걱정이 앞선다. 젊었지만 몹시 추웠던 어느 겨울날, 훈련소에 입소했던 첫날과 가까운 느낌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주위에서 많이 들었지만, 실제 생활이 어떨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곳에 나 홀로 내던져진 느낌, 두려움,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난 나름 철저히 준비한 편이다. 12년 전부터 선배와 작게나마 시작한 펀드가 이제는 제법 몸집을 키웠고, 같이하는 이들도 늘었다. 이 펀드에서 나오는 수입과 퇴직 후 받게 되는 연금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내와 둘이 지내기에는 부족하지는 않다. 다행히 첫째가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갔고 둘째는 중국 국경 부대에서 군복무 중이라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없어 그나마 여유로운 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나를 둘러싼 사회 전체가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가장 큰 변화는 10여 년 전 시작된 AI이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술로만 여겨지던 AI가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하여 마침내 인간을 따라잡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단단한 육체를 갖게 된 AI로봇은 급속도로 인간의 자리를 채워나갔다. 청소, 건설, 요리, 운전 등 육체노동이 필요한 일자리부터 AI로봇으로 교체되었고, 인간만이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기획, 창작, 예술의 영역까지 AI가 손을 뻗쳤다. 우리 회사만 해도 1,200만 명이나 되는 고객 응대를 전부 AI챗봇이 처리하고 있으며, 전국에 깔린 수만 개의 통신 장비 점검, 유지보수도 몇 명의 관리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AI로봇에 의지하고 있다. 본사에서 하던 상품 기획, 마케팅도 AI가 담당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주 3일 근무는 일찌감치 자리 잡았고, 회사는 인간 직원을 계속 줄이고, 로봇 직원을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보통 출근은 자율주행 버스로 한다. 앱으로 정한 시간이 되면 버스가 집 앞으로 온다. 기사가 없는 자율주행 버스는 몇 명을 태우고, 내가 일하는 한강 위에 세워진 오피스 빌딩으로 향한다. 도시 집중화가 가속화되면서 땅 위에는 무엇을 지을만한 공간이 없어졌고, 대신 한강 위에 많은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이 별로 없다. 재택근무도 많고, 일주일에 삼일밖에 출근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난 사내 시스템에 로그인해 내 상사인 관리자 AI에게 출근했음을 알린다. 그(그녀)는 이런저런 업무지시를 내리고, 난 업무를 시작한다. 내 주요 업무는 실무자 AI가 기획한 상품을 분석하는 일이다. 고객들의 관심을 끌만한 수백 종의 상품을 매일매일 AI가 쏟아내고, 난 그중 쓸만한 것들을 골라낸다. 몇몇은 아주 훌륭하다. 내가 이런 획기적인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런 창조적인 일을 해본지가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다. 난 집이 아니라 한강변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오피스텔로 향한다. 이곳은 나의 애인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그녀는 최신 모델의 반려 로봇이다. 얼마를 내면 그녀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준다. 재미없는 나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기도 하고, 이제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함께 읽으며 즐거워한다. 가끔은 늙은 몸을 구석구석 애무 해주기도 한다. 무엇을 요구해도 그녀는 거부하지 않는다. 게다가 외모도 나이도 성격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오늘은 흑인 20대, 내일은 백인 40대가 되고, 가슴도 A컵에서 C컵으로 자유자재다. 때로는 십수 년 전 첫사랑의 그녀가 되기도 하고, 20대에 처음 만났던 아내의 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아내 몰래 반려 로봇을 만나고 있지만, 아내도 나 몰래 반려 로봇을 만나는 눈치이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에 그녀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

퇴직 후 무엇을 할까. 남한과 달리 자연환경이 그나마 좋은 북한의 개마고원으로 많이들 가고, 이제는 우리나라에 한참 뒤처져서 물가가 우리보다 싼 미국이나 일본으로 은퇴이민을 가기도 한다. 그때 우리 부부와 두 반려 로봇이 같이 가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버스가 어느새 집 앞에 멈춘다.


People #2, 2034년 12월 22일

올해가 마지막일 계획이었다. 내년이면 난 62세가 되고, 기나긴 시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어야했다. 정년 퇴직을 준비해왔으나 막상 그때가 다가오니 걱정이 앞서며 어떤 일이 펼쳐질지, 실제 생활이 어떨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야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곳에 나홀로 내던져진 느낌에 두려움과 불안감, 설레임이 뒤섞여 어쩔줄 몰라야 했다.  


‘대구 가창면 모모씨 60세 사망 빈소 영대병원’. 흔한 문구. 단, 본인이 아닐때만

… 지금 여기 있었어야했다. 순간만이 영원함을, 전부임을 알았어야했다. 보이는 것이 들리는 것들이 손가락에 발끝에 와닿는 아내의 손발이 기적임을.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아이처럼 매일 세계를 새로 만나고 안녕인사하고 우정을 시작했었어야 했는데.. 씨팔. 미루는게 아닌데.  유명한 묘빗구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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