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유튜브를 보는데 불교에 관한 쇼츠가 나왔다. 짧은 시간 동안 이러저러한 말을 많이 했지만 결국 욕망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누워서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 쇼츠가 불교의 경구를 말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해탈하기를 바란 건 아니겠지만 누워있다가 무언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서 고통스러웠던 적은 있었나. 운동해서 몸만 힘들고 정신은 괜찮다면 그것도 고통일까, 육체와 정신이 둘 다 고통스럽고 힘들어야 내가 무언가 강렬히 욕망하고 있는 상태인 걸까. 그렇다면 매일 헬스장을 가는 우락부락한 나의 사촌동생은 어떤 존재일까. 예전에 동생이 말하길, 운동을 계속하다가 안 하면 몸이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또 운동을 나가면 그것도 몸이 힘들고 아프다고 한다. 동생은 그런 고통은 즐겁기도 하고 또 제대로 운동을 했다는 증거라고도 생각한다 말했다. 반쯤 수도승인 걸까.

30초 안에 설명은 당연히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부처님은 한 말씀으로도 제자에게 깨달음을 줬겠지 싶어 계속 생각을 굴려본다. 적어도 욕망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고통은 뭘까 정말 살이 타는 듯한 그런 것일까.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이라고 쓰여있긴 했다. 그럼 목이 말라 쩍쩍 갈라지는 그런 고통일까. 정말로 통증의 영역이라면 애기는 나올 때부터 어떤 부정의 영역에서 시작하는 건가.

날이 어두워졌다, 분명히 영상을 볼 땐 해가 떠있었는데.

어쩌면 내가 해답을 알고 싶은 욕망에 지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들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모른다고 말하는 이유는 적어도 아프지 않고 즐겁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받고 힘들고 아프지만 즐거우면 고통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해탈의 경지는 아픈 것은 분명하지만 아프지 않은 그런 것일까.

와이프 몰래 과자를 먹는다. 즐겁다.

어차피 수학처럼 정답이 툭툭 떨어지는 그런 종류의 문제는 아니니까, 적어도 슬프진 않았다. 오히려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쩔쩔매던 어린 시절이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어찌 되었든 욕망은 고통을 불러오는 그런 것이긴 한데, 고통 그 괴로움은 그저 괴로움이고 번뇌는 그저 번뇌일 뿐이다. 부정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부정한가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강력한 육체미의 사촌동생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고통과 번뇌는 발아래 두고 그렇구나 하고 하면 될 것 같다고-

아내에게 몇 시간의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렇구나." 하고는 티브이로 흑백요리사를 튼다. 나는 머쓱해져서 같이 옆에 앉아 들켜서 뺏긴 과자에 손을 슬그머니 넣는다.

슬프게도 나는 허무 펀치를 맞았고, 고통스러웠다.


작가의 이전글짧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