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금계국 떠난 옆 자리에 기생초 꽃 피운 걸 보면
가뭄의 실개천에서 하루만큼의 목숨을 연명하는 왜가리와 마주치면
모노레일 위를 옮겨 다니는 까치들을 보면
큰 물 지나가면 허물어질 걸 알면서도 정성껏 돌탑을 쌓은 이의 손길이 느껴지면
수레국화 피었다 진자리에 다시 수레국화 철없이 피어난 걸 보면
시멘트 담벼락을 잡고 오르는 담쟁이넝쿨을 보면
걷다가 지칠 때 이마를 만지고 가는 몇 올의 바람을 생각하면
무엇에 쓰일까 싶어도 나비에게 무당벌레에게 꽃술을 내주는 꽃에 비하면
-시집『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시선77,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