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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Nov 19. 2023

그린델발트를 꿈꾸며

영감의 원천

2023년 11월 19일(일) 오전 3시 29분


한 7년 전쯤인가 우연한 결심으로 산을 오르고자 시도했다. 집과 학원을 자동차로 5분 걸려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던 나였다. 운동이라고는 새벽에 하는 수영 한 시간이 전부였다.



동네 근처에 수목원이 있었고 그 수목원 뒤로 한 200미터 정도 되는 작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 그 동산을 헉헉거리면서 올랐고 그때 나의 저질체력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이러다가 내 심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몸과 마음 모두 바닥상태였다. 당시 나는 고혈압 초기 단계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산행은 조금씩 높이를 올려가며 이어졌다. 오를 때는 죽을 듯이 힘들고 왜 이 짓을 할까 수도 없이 되뇌면서 올라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정상에만 도착하면 오를 때의 고통은 간 데 없고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면서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황매산 철쭉과 비슬산 참꽃.  덕유산 고산대


초기의 진입장벽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산을 다녔다. 당시 대구에 살았던 나는 대구 근처의 하룻만에 다녀올 수 있는 산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비슬산, 팔공산, 금오산, 가야산, 황매산 등  탄력이 붙자 반경을 더 넓혔다. 주왕산, 소백산, 덕유산, 속리산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중산리 코스를 통해 지리산을 올랐다.



한국의 산과 풍광을 맛보자 욕심이 생겼다. 작은 꿈이 생겨났다. 외국의 산들은 어떨까? 한국의 산들과는 또 다른 풍광을 보여주지 않을까? 유튜브를 통해 일본의 산을 조사했다. 그리고 알프스를 찾아보았다. 일본의 테야마 영봉이 나의 타깃에 올랐다. 언제 갈까? 갈 수는 있을까? 알프스의 그린발데트는 언제 가지?  이런 꿈을 꾸며  KBS <영상앨범 산>을 즐겨 시청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자 이 모든 꿈들이 유보되고 결국 새로운 계획인 배낭여행으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그렇게 많이 산을 올랐지만 오를 때의 고통과 괴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대가였다. 그럼에도 내려와 일상을 살면, 계속 산이 떠오른다. 뭔가가 있는 것이다. 뭔가가 나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대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에너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산을 오르면서 세상을 배우기도 했다. 오르는 고통의 시간은  길고 정상의 성취감을 짧다. 그 고통을 이겨내면 작은 기쁨이 나에게 주어진다. 세상도 이와 같지 않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었다. 그들이 흘린 감격과 환희의 눈물은 지난 4년간 초인적 의지로 땀 흘리고 고통스러운 연습을 한 대가였다. 인생의 작은 비밀이다. 우리 인생에 감격과 감동이 없는 이유는 땀과 고통, 인내의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 짧은 환희를 뒤로 하고 그들은 다음 대회에 도전하기 위해 또 그 지옥의 훈련에 스스로를 던진다.



정상을 쳐다보며 저기를 언제 올라가나  이러면 오를 수 없다. 너무 멀어 좌절하는 것이다.  그때 우연히 마주친 또 다른 등산객의 한 마디  “ 서두르지 마요 천천히 한발 한 발 내딛는 거예요”  초기 등산을 시작할 때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그냥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인내하고 인내하면서. 그러자 어느덧 정상이었다.  한발 한발 묵묵히 내딛는 걸음의 소중함을 그때 알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

                                                     -고은-


시인의 말처럼 산행이 익숙해지자 보이지 않던 주변 풍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이 나에게 생기를 준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자연 옆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현대의 산업사회가 만들어 놓은 도시의 삶이 인간에게 한없는 편리함을 주지만 반대로 잃는 것도 많다.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소외감이 인간의 영혼을 황폐화시킨다. 자연을 떠난 인간은 아프다.

건축물은 그 자체로도 멋있지만 자연과 어우러질 때 더 빛이 난다.  폴란드 크라쿠프

바벨성과 비스와 강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돈에 얽매지 않은 전원생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욕심을 버리고 조금의 불편함만 감수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접 집을 짓고 자기 먹을 것을 직접 땀 흘려 농사지으며 검소하게 살면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월든>은 문명사회에 피로함을 느낀 많은 현대인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소로우가 월든 호수에서 살았던 기간이 1년 6개월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속으로 조금의 배신감을 느꼈다. 겨우 1년 반 살아놓고 많은 사람들을 홀리다니.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현대는 과학문명의 시대이다. 인간이 가진 압도적 기술력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극복하며 살아간다. 그때의 자연은 이해의 대상이고 정복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연은 경외이며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이다.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되고 초기의 엄청난 대혼란기를 거쳐 별들이 탄생하고 우주의 모든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별들이 저마다의 궤도를 찾아가며 충돌과 폭발을 반복한 뒤  각자의 자리를 잡는다. 한 치의 착오도 없이 힘의 법칙에 따라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궤도라는 대 법칙의 전제 위에서 자기 생명을 이어간다. 절대적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 과학이 이루어 낸 업적은 거기에 비하면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더 근원적인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우주의 법칙아래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받으며 산과 땅을 밟고 땅에서 난 것을 먹으며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대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으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작품들을 남겼다.  니체가 그랬고 겸재 정선도 그랬다. 그 초월적 존재 앞에 조용히 머리 숙이고 경외하는 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가 아닐까?



머지않아 나는 그린델트로 갈 거다. 생명의 에너지 가득 받으며 나의 영혼을 충전하고 싶다. 그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거다.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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