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09
삶은 원래 유약함의 집약체 같은 것인가
공포스러운 수심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반복될 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카페인을 삼킨다. 이것은 결국 일종의 망각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행위에 도파민이 생성되는 편인가.
원래 인간은 악하게 태어나는 것인가의 물음으로부터 신조차 그 답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만 커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게 살지 않으면 온몸에 가시털이 돋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당신들이 위선적이어도 좋으니 나에게 피해만 주지 말아 다오 그럼 나도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 하는 태도를 고수하며 살았다. 먼저 물지 않으면 먼저 물일은 절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을 주는 것에 집착하고 받지 못한 배려에 상처를 받았다. 그놈의 정이 뭐길래 없는 밑바닥까지 긁어 파내며 배려를 건넸다. 스스로의 목마름에는 응답하지 않을 채 나를 갉아먹었으니 업보를 돌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풍자하는 사회, 새롭지 않은 일상, 머리만 커져버린 개미처럼 일과 집을 반복하는 사람들. 그리고 개미 군중 속 날개 빠진 배짱이. 나는 유약함의 집약체로서 공동체 사회 속에서 연명할 수 있는가? 베짱이도 배짱이 나름대로의 삶이 있겠거니 했던 지난날의 청춘은 이제 없다. 찰리 채플린 영화 속 주인공처럼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량 베짱이도 사슴벌레도 개미 가면을 써야만 한다.
당신도 개미 가면을 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