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까지 열 발자국

251024

by 원호연


먼저 떠난 이들의 안부를 묻지 않아 이렇게 벌을 받나 싶기도 합니다. 삶은 남겨진 자의 것이니 이대로도 괜찮은 것일까요? 저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밤사이의 일도 모른 채 편하게만 자던 제가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속 메시지의 첫 줄만 읽고,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입에선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전임교수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을 때 저 혼자 분노했습니다. 전 날 언니(동기)와 다투던 무리들이 나에게 다가와 우리 서로 힘든 거 있으면 말하고 지내자며 손을 먼저 내밀었을 때도, 어린 마음에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평생 열리지 않을 동창회지만 만약 언젠가 열린다면 저는 동창회에 갈 수 없습니다.


언니를 만난다면 언니에게 10년 넘게 유지한 동기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졸업 후에도 꽤나 우정을 이어왔지만 저의 이기심으로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살아생전 나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더라면, 그간 많이 의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의뭉하다기보다 오히려 화끈한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먼 귀갓길을 떠나는 저에게 전화를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날은 외롭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언니를 다시 만나는 날엔, 어리광 좀 부려야겠다 생각부터 한 것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내 이기심으로 조각난 관계들을 구태여 주워다 모아, 퍼즐 맞출 필요가 없는 걸 알면서도 그녀 앞에서 내 편 좀 들어달라 하고 싶습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대학 동기들은 이제 하나둘 자신의 보금자리로 떠났습니다. 그 길에 나라는 존재와 어울려 행복했던 시간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그걸로 됐다고 말해줄 거 같습니다. “야 너 잘 버텼다.” 해줄 거 같습니다만,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도 무지막지한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만두겠습니다. 동기 언니가 떠난 지 햇수로 12년이 되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분들이 편하길 바라는 마음에 언니 번호도 지웠습니다. 남겨두면 내가 취중 문자라도 보낼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핑계가 맞습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꼭 핑계를 대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졸업을 앞두고 언니가 떠났고, 나는 복지계에 발을 담갔다 빼내어 물기를 털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복지계에 발을 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누구는 전혀 다른 방향의 진로를 잡고, 누구는 결혼과 출산을, 누구는 집을 샀고, 누구는... 내가 그날 언니에게 전화 한 통을 했다면 달라졌을까요? 학교 방면으로 잘 가던 그 흰색의 차가 언니 차인 줄 알았다면 내가 전활 걸어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을 수도 있을까요? 결국 그날 학교에 언니가 오지 않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전 그 이후로 강의실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과제물도 사라져서 복구하느라 고생 깨나했다고, 같이하던 팀원도 과제물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다시 나아갔다고. 스물한 살의 늦가을이 그렇게도 추운 줄 몰랐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언니를 위한 초를 켠 적이 있습니다. 언니의 정확한 기일도 모르면서 그냥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가야겠습니다. 언니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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