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1987년생,
올해로 직장생활 11년 차가 된 ‘이 과장’.
하지만 그녀에게 ‘사회생활’은 여전히 낯설고, 때로는 벅차기만 합니다.
이 과장은 호불호가 분명하고,
자기만의 색깔과 주관이 또렷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조직 안에서는 종종
‘순진한 먹잇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솔직함은,
간사한 누군가에겐 절호의 ‘프레임 씌우기’
기회가 되곤 하죠.
그리고 어느새,
그들이 짜놓은 그럴싸한 흐름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이 과장은 그런 사람’이라는
주홍글씨가 조용히, 그리고 깊이 새겨집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우리는 어릴 적부터
정직해야 하고, 솔직해야 하며,
남을 속이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90년대 이후 세대는
조금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세태를 두고
“19세기 교사가, 20세기 교실에서, 21세기 아이를 가르친다”는 말이 있더군요.
듣고 보니,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그 정직함은 무기가 아니라 약점이 되어
돌아옵니다.
이 과장도 그랬습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녀는
간계와 계산이 넘실대는 사회생활 앞에서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좋은 사람’이 아닌,
‘만만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그렇게 이 과장은 조금 서툴고, 덜 다듬어진
자기만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장착해 갑니다.
‘나의 착함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생존 전략이었는지도 모르죠.
사회생활 11년 차.
이 과장을 바라보는 평가는 늘 극과 극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이들은
“너무 미국 스타일이야”라는
뜬금없는 라벨을 붙이고,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은
“군고구마처럼 속은 뜨겁고 단단하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어설프게 이 과장을 아는 이들은
이 과장에게 ‘통제되지 않는 직원’의
프레임을 씌워주고 싶은 듯합니다.
Yes,
But
이 과장은 굴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흔들리고 작아질 만큼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순진해 보일지는 모르나 순수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스스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와 메타인지를 통해
퇴보가 아닌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의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루틴이 보스의 삶을 지켜나가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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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장님과의 대화 중
"이 과장, 통제가 되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내 머릿속 생각회로가
또다시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될 일인데,
나는 또 그 ‘통제’라는 단어에 꽂혀버렸다.
정말, 못 말려. 이런 나.
그런데 말이지,
통제라니.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누구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다는 걸까?
결국,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타인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번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제가... 통제가 되어야 하나요?
...댁의 가정은 통제가 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