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직업이라는 착각

비트윈 2025/2026

by 비누인형

약속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세 페이지로 정리해 볼 것, 그리고 일 년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도련님의 제안이었고 나는 수락했다.


chapter 2


살고 싶은가. 이미 태어나 버린 걸. 살아 있다는 것은 뭘까. 버티는 것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유 같은 걸 찾아보는 건 어때. 삶의 이유. 처음부터 나의 선택이 아닌 것에서 이유를 찾는 건 불가능해. 목적이라면 네가 정할 수 있는 거잖아. ...


목적. 언제나 그곳에서 막힌다. 시간과 공을 들여 애써온 일이 너무나 쉽게 의미를 잃어버리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방향이 없으니 추진력을 잃고 만다. 삶이란 아이러니하게도 '목적'을 얻기 위해 '시작'을 시작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든 머리를 굴리든 일단은 시작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목적을 가늠한다. 가늠한다. 가늠할 뿐이다. 후회나 공허, 덧없음 같은 모든 감정은 그 때문에 생겨나는 게 아닐까. 필연적으로 시행착오 없이는 답을 얻을 수 없도록 설계된 질문. 수많은 하위 카테고리들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과정이 내게는 참 길고 어렵다.


로케이션매니저어시스턴트, 세일즈, 프리뷰어, 방송작가, 치기공사, 몇몇 카페와 식당의 단기 아르바이트... 무엇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들이다. 한 달간의 짧은 경험부터 10년 넘게 지속한 일까지 다양하다. 언뜻 보면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뿔뿔이 흩어진 '점' 같지만, 사실은 오직 나만 아는 제반사항을 숨기고 있는 '섬'들이다. 어떤 이유로 그 일이어야 했고 또 어떤 이유로 그 일뿐이었던 타임라인 속에 감춰진 나의 이야기들. 어떤 때 일이란 그저 과정의 하나로 머무는 것이었고 어떤 때는 전부였고 어떤 때는 더 중요한 무엇을 위한 부가장치로 존재했다. 저 직업들을 하나씩 거치며 변화되어 온 나를 나는 알고 있다. 일을 한다는 것은 훌륭한 수행의 기록이다.


직업을 통해 삶의 목적을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몰두하겠지만 지금까지 경험 상 직업은 쾌락과 만족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었다. 도파민이 사라지고 심심함이 찾아오고 고통이 될 때, 그리하여 불만이 일상을 잠식할 때 변화를 모색한다. 같은 패턴 같은 결론, 그래서 직업은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제법 큰 도파민의 영역을 맡고 있으므로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무엇을 할까, 지난 1년 동안 고민해 온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 그것이 내게 직업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랫동안 들끓었던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욕구는 어떤 '관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또 다른 마음이란 걸 알았다.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로 완수해야 하는 막중한 과업 같은. 인생의 숙제처럼 안고 있는 그 일은 서서히 진행 중이다. 그래서 결과물로 답해야 하는 직업의 생리와는 맞지가 않다. 하지만 무엇이든 쓰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가장 체계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실 없다. 무엇을 하든 똑같을 거란 결론을 얻었다. 이제야 명확하게 직업은 (필요는 하지만) 부가적인 장치로만 내게 의미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이것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의 영역이 무제한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제약이 많아진다. 경력이 없고 모국어가 아니며 다른 공동체를 경험하며 살아온 문화적 이방인인 나에게는 더더욱 많은 제약이 있다. 그래서 때때로 노력에 화가 난다. 감정에 매몰되는 순간이 잦아진다. 이토록 모진 수련이 없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이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큰 수확이라 해두자. 새로운 영역에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공통분모가 없는 또 다른 직업군이 내 이력서에 새겨질 예정이다. 기대도 설렘도, 이상하게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다. 더 이상 어떤 일을 하느냐는 내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게 된 기분이다. 다만 흥미롭기를 바라고 있다. 생의 도파민 영역으로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이 하고 싶은가, '무엇을 위해서?'.

모든 질문은 수직적이기도 수평적이기도 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에 관해 질문한다. 꿈이라는 예쁘고 추상적인 단어를 빌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는 순간에 꿈이라는 목표는 달성된다. 치열함과 고뇌가 사라진 자리... 문득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나,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질문에 부딪힌다'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다. 솜사탕처럼 말랑한 것들에 부딪힌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으니. 부딪힌다는 것은 딱딱하고 아프게 하는/할지도 모를 무언가를 만나 멈춰 선다는 의미다.

수십 번을 멈춰 설 때마다 언뜻 하나의 스테이지를 부수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모든 스테이지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뻗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하는 일만 바뀔 뿐 똑같은 패턴의 삶이 반복되는 것일 게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뾰족하게 돌출되는 하나의 질문. 그 질문이 더 이상 막연한 것이 아닐 때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한 단계 수직 상승.



계속해서 목적을 묻는다. 방향을 찾는다.

for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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