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윈 2025/2026
약속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세 페이지로 정리해 볼 것, 그리고 일 년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도련님의 제안이었고 나는 수락했다.
chapter 1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상황이 만들어 낸 짧은 것임이 아닌 걸 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다. 나는 살고 싶은가 혹은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삶'이란 글자가 유독 어렵게 다가왔던 나는 스물셋 쯤에 그 고민을 멈추기로 했다. 작은 상자 안에 가두고 열쇠로 꽁꽁 잠가서 땅 속에 파묻었다.
가볍게 살아보자고, 무엇으로든 살아보자고 다짐하며 착실하게 살았다. 무섭도록 일에만 집중한 시간이었다. 사무실과 집, 인간관계라고는 직장 동료 밖에 없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나를 갈아 넣어 만든 결과물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그러므로 나의 이십 대는 쨍- 했다. 오로지 나의 열정으로 채워 나간 프로필, 적당한 벌이와 사회적 위치, 직업의 희소성이 안겨주었던 자존감. 그렇게 삶이란, 살아지는 거였다. 존재에 대한 고민 없이도 빛나는 순간이 찾아왔고 굳이 의미를 두지 않아서 오히려 많은 것들로 살아볼 기회가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이 괴테나 니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몰두'의 대상, '결과'로 표현될 수 있는 무엇. 그 안에서 느끼는 쾌락은 굉장한 것이었다.
스물세 살 이후 삶을 상대로 한 실험의 결론이다.
두 달 남짓 인도를 여행하며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알았다. 일찌감치 정리했어야 할 감정들이 일에 파묻혀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다. 아빠의 죽음, 사랑의 상처, 상념이 남긴 잔재들과 그 뒤의 공허함... 덮어두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줄 알았던 감정들이 조각조각 깨지고 흩어진 채로 마음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했지만 이전처럼 살아지지 않았다. 너무나 간단하게 다시 돌아와 버렸다. 처음으로. 무엇을 위한 삶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지금껏 나는 모든 길 위에서 정확한 방향이 필요하지 않았어. 길은 언제나 광대했고 어느 곳이든 이어져 있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이곳에서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이유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시간의 유한을 느끼기 때문일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명료하지 않았고 그래서 작은 확률에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됐지만, 조금은 명료해졌으면 하고 제법 뚜렷하게 나를 정의 내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
2024. 11. 샤르빌에서
2024년 가을, 프랑스에서 랭보의 도시를 떠나며 오랜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썼다.
명료하고 뚜렷한 무언가- 나를 정의 내릴 수 있는 명확한 단어-
나이가 들면서 단어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답을 좇고 있다. 여전히 꽁꽁 묻어 둔 그 무거운 한 글자. 열고 싶지만 열고 싶지 않은 상자 안에서 열지 않았지만 보란 듯이 나를 조종하는 위압적인 그것. 돌아보면 나에게 결단은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일을 그만두는 것도 담배를 끊는 것도 여행도 이별도 이민도... 제법 큰 일들이 항상 미련 없이 신속하게 행해졌다. 삶과 자아,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나를 떠돌게 하는 것인지, 강력한 동기를 갖지 못하는 전제는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제나 너무나 쉽게 '무의미'해져 버린다.
이제 나는 꽁꽁 잠가서 땅 속에 묻어 두었던 상자를 꺼내 볼 용기가 생긴 걸까. 거침없이 걸어왔지만 끈질기게 회피해 왔던 그 질문을 똑바로 마주할 준비가 된 걸까.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