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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Feb 05. 2024

창의성과 더 좋은 사람

그리고 더 좋은 예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자주 한다. 그러한 생각과 다짐이 정말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회의적이다.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생각과 다짐은 언제나 공허할 뿐이다.


공자와 더 좋은 사람


君君臣臣父父子子. 군군신신부부자자. 논어에서 제나라 왕 경공에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正名)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는 공자가 정치에 대해서 묻는 경공에게 건넨 답이지만, 나는 이 말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아들로서 부모님께 더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하고, 동생의 오빠로서 동생에게 더 좋은 오빠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더 좋은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가진 여러 역할이 있는데, 이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수행할 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방법론으로서의 창의성과 개연성 논쟁


더 좋은 사람 또는 훌륭한 사람이 그러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창의적인 것은 무엇일까? 나의 정의는 이렇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 이 정의에 입각해서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예술에서의 창의성은 개연성과 양립하기 어렵다. 요즈음 대한민국 관객들은 영화를 평가할 때 개연성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들은 개연성이 낮다는 것을 비판의 주요한 근거로 든다. 훌륭한 영화는 개연성이 높아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연성이 높다는 것은 현실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개연성을 예술적 비평의 주요 잣대로써 활용하면, 예술의 영역을 현실적 가능성의 영역으로 축소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예술적 표현의 운신의 폭이 한없이 줄어드는 것이다. 높은 개연성은 결코 예술의 미덕이 될 수 없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나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가 개연성이 높은 작품인가? 아니다. 개연성이 낮은 작품이지만 분명 훌륭한 작품이고 나아가서 위대한 작품이다. 나는 이러한 예를 무수히 많이 들 수 있다. 뛰어난 개연성보다는 뛰어난 창의성이 예술을 훌륭한 예술로 거듭나게 해준다. 창의적인 작품은 관객에게 사유의 기회와 관객이 새로운 인식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의 재료를 제공한다.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망치로 현실을 부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가 예술가로서 규칙들을 부술 수 있도록, 프로처럼 규칙들을 배워라.
Learn the rules like a pro, so you can break them like an artist.
-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o




창의성이 훌륭한 예술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 진부하다. 창의성이 훌륭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이것은 나의 지론인데, 나름 창의적인 생각이지 않은가? 앞서 나는 창의성을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창의력을 발휘함으로써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 이상, "날개"


일상적 창의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 즉, 일상에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능성이 선택을 낳고 선택이 변화를 낳고 변화가 훌륭한 인간을 낳는 것이다.


제안을 하나 하겠다. 이 글의 독자들에게 하는 제안이자 나에게 하는 제안이다. 지금부터 우리의 삶을 이루는 수많은 일상적 순간에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다른 선택을 하자. 예를 들어, 당신이 가족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특정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관성적으로 화를 낸다. 지금부터는 관성적 분노를 억누른 채 잠시 상상해보자. 내가 분노를 느끼거나 표현하지 않는 가능성. 상상한 다음, 비일상적 가능성에 의거한 비일상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결국 선택에 관한 영화다. 우리의 선택들이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지, 다른 가능성이 어떻게 우리를 바꿀 수 있었을지 영화는 보여준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허둥지둥 살아간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고 서두를 것을 재촉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빈곤한 상상력을 지닌 채 살아간다. 자주, 잠시 멈추자. 멈추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자. 그 가능성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모두에게 인생은 처음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자.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가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에는 말이에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웨이먼드의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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