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전말
2월 13일
by
화니와 알렉산더
Feb 13. 2024
늙은 개가 주인에게 청했다
달리 바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절대적으로는 개보다 늙고 상대적으로는 개보다 젊은
주인이 답했다
어디든지 보내드리겠소
어디로 가고 싶나요
주인의 승낙에 감격했는지
큰 눈에 눈물이 고인
늙은 개가 주인에게 답했다
달, 달에 가고 싶습니다
희고 큰 눈에 눈물이 고인
늙은 개에게
주인이 답했다
그대는 라이카*가 부러웠나 보군요
다음 말을, 주인은, 망설였다
왕복이 좋소? 아니면
말을 중단하고 주인은 늙은 개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빈다
늙은 개가 평생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늙은 개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울고 만다
늙은 개의 건조한 코 때문에
한때 촉촉했던 코다
주인이 말을 잇는다
편도가 좋소?
코는 건조하고 눈은 축축한
늙은 개가 주인에게 답했다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달로 떠나는 버스 정류장
늙은 개와 주인의 시야에 버스가 진입한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커지다가
늙은 개와 주인 앞에서 멈춘다
저의 마지막을 당신이 모르기를 바랐습니다
다만 저를 떠올릴 때 너무 슬퍼하지는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늙은 개가 탄 버스가 주인을 떠난다
주인은 버스 정류장에 한참 서 있다
지구에서 보이는 달 위로
늙은 개가 탄 버스의 그림자가 보일 때까지
라이카* - 1957년 11월 3일 소련 서남부(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지구를 한 바퀴 돌았던 개. 비행 5~7시간 사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사후 5개월 동안 지구를 돈 후 이듬해 봄에 지구로 돌아왔다. 라이카는 모스크바 시내를 떠돌던 주인 없는
개로, 몸무게는 5 킬로그램이고 암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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