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에서 보낸 시간

by 여행하기 좋은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육아휴직은 꿈도 꿀 수 없을 때였다. 휴직한다는 건 퇴사를 한다는 의사로 표현되던 시기라 출산휴가가 끝나자마자 복귀했고, 아이는 문경에 계신 부모님께 맡겨지게 됐다.

매주 금요일 일이 끝나면 문경으로 내려가 아이를 만나 주말을 함께 보내고, 다시 인천으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이 시간이 누구를 위한 시간일까? 나, 아이, 부모님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특히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가을날.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던걸 알았는지 일찍 올라가서 쉬라며 엄마가 등 떠밀어 집을 나왔다.


'일찍 집에 간다고 내 마음이 편할까?'

'다시 아이에게 돌아가야 하나?'


얽힌 실타래 같은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머뭇거리다 결국 인천으로 올라가리로 했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되니 빠른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3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경기도에 다다랐을 때 '여주신륵사' 표지판이 보였다. 마치 나를 보며 잠깐 들러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신륵사로 방향을 틀었다.


일요일 오후 신륵사는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나에게만 열려있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거쳐 신륵사까지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나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경내를 걸어 남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 '강월현'으로 향했다. 그곳에 앉아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잘 왔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곳에 아이도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에 남한강과 함께 내 눈물도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 엉켜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예부터 여주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땅이라 낙토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그 풍경을 보니 땅의 행복한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바람과 풍경의 위로를 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더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내 어두웠던 마음도 남한강 뒤로 사라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어 인천으로 데려오는 데까지는 9개월이 걸렸다. 아이와 떨어져 지내며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그 순간에 찾았던 신륵사에서의 시간이 없었다면 일과 육아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여름 아이들과 신륵사를 찾았다. 십여 년 전 일은 모른 체 아이들은 마냥 즐거웠다.

신륵사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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