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역 앞에 있는 다슬기해장국을 먹으러 가기 위해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전날 근처 빵집에 갔다가 다슬기해장국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침에 먹으러 와야겠다며 일찍 일어났다.
'이 시간에 누가 밥 먹으러 오겠어?'라는 생각에 느긋하게 준비해서 6시 45분에 도착했는데, 사장님이 내 손에 '5' 숫자가 쓰인 집게를 쥐여줬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려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 뒤로 오는 손님들에게는 더 많은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밥이 잘못돼서 50분 정도 기다려야 해요. 죄송해요."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을 보며 대기 5번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 시간에 오기 위해 일찍 일어난 자신을 칭찬했다.
영월역 앞에는 꽤 많은 다슬기 해장국집이 있다. 그중에 내가 선택한 집은 외벽에 연예인 사진이 셀 수 없이 붙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거기다 대기 의자에 사람이 가득해서 누가 봐도 맛집 같았다.
'이왕 먹는 거 맛집을 가야지!'라며 선택했다.
10여 분을 기다려 자리를 안내받고 다슬기 해장국 하나를 주문했다.
기본 반찬으로 김치, 깍두기, 고들빼기김치와 더덕무침, 굴젓에 낙지 젓갈까지 제공됐다. 그중에서 알싸한 향이 느껴지는 고들빼기김치는 요즘 쉽게 먹을 수 없는 반찬이라 유독 손이 갔다. 맛있는 반찬을 먹고 있으니 시래기와 부츠가 가득 들어간 다슬기 해장국이 나왔다.
다진 청양고추와 양념장을 넣고 잘 저어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에 시래기는 씹지 않아도 넘어갈 정도로 부드러웠다. 입안에서 춤추는 다슬기를 찾는 재미도 있었다. 쫄깃하면서 가끔 서걱하게 씹히는 다슬기를 먹고 있으니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다슬기는 지역에 따라 고동, 올갱이, 고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내 고향 점촌에서는 골뱅이라고 불렀다. 사회에 나와 동료들과 술 마시러 들어간 가게에서 골뱅이탕을 주문했는데, 큰 골뱅이가 나와 당황했던 적이 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아. 이거 골뱅이 맞아?"
"이게 골뱅이지. 이거 말고 골뱅이가 또 있어?"라는 동료의 말에 내가 알고 있던 골뱅이가 표준어로 다슬기라는 걸 알게 됐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골뱅이를 잡으러 가는 날이었다. 당시 차가 없어서 아빠는 오토바이 뒤에 나와 엄마를 태웠다. 골뱅이는 동로면에 있는 금천에서 잡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분을 넘게 달려야 하는 꽤 긴 거리였지만, 그땐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에 도착해 엉덩이쯤 오는 강물에 들어가 허리를 숙이고 수경을 강물에 올린다. 그 아래 보이는 돌 중 가장 큰 돌을 뒤집으면 골뱅이들이 붙어있다. 골뱅이를 떼어내 수경이 올리기를 반복하면 금세 수북이 쌓인다. 두어 시간을 잡은 골뱅이는 큰 양파망에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빨간색 대야에 골뱅이를 붓고, 그 위에 또 다른 대야를 엎어 골뱅이가 더러운 것들을 토해내도록 밤새 물에 담가뒀다. 다음날 속이 깨끗해진 골뱅이를 건져내 겉에도 깨끗해지도록 여러 번 비벼서 씻어준 다음 골뱅이만 대야에 담아두고 물을 끓인다. 대야에서 골뱅이가 얼굴을 내밀고 기어갈 때 끓인 물은 한번 붓는다. 그래야 골뱅이 눈이 떨어지기 쉽고 까먹기 좋다고 했다. 그다음 냄비 가득 골뱅이와 소금을 넣어 끓이면 초록색 물속 골뱅이를 만날 수 있다.
골뱅이국을 끓이기 위해 속살만 발라내어 대접을 가득 채우면 그제야 골뱅이를 먹을 수 있었다. 한 손에는 골뱅이를 잡고, 한 손에는 바늘을 잡고 발라먹었다. 골뱅이를 잡고 있던 손은 금세 초록 물이 들고 손가락 끝이 쪼글쪼글해졌다. 손에 밴 짠내가 이틀은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은 초록 물에 된장을 풀어 끓인 골뱅이국이었다.
지금은 물이 말라 골뱅이가 많이 사라지고, 골뱅이가 있을 만한 곳은 위험지역 표지판 때문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골뱅이는 잡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그 기억 때문에 여행 가는 곳에 다슬기 해장국이 유명하면 꼭 들러서 한 그릇 먹는다. 골뱅이를 잡으로 가던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던 골뱅이국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