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기저귀를 떼고 18개월쯤 되었을 때 두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별이달이가 처음 비행기를 타는 건 아니지만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을 찾다 비교적 짧은 거리의 타이페이로 선택했다.
여행지를 선택하고 보니 타이베이는 관광을 위해 많이 걸어야했던 도시였다. 18개월 달이가 걸을 수 있는 거리는 한정적이었고, 낮잠을 자야 했기 때문에 여행을 위해서는 유모차가 필요했다. 유모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모든 사고가 멈췄다.
‘어떡하지?’ 이 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짐을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큰 사이즈 캐리어가 필요했고, 별이가 달이보다 컸다고 하지만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일곱 살에 불과했다. 내 손은 두개인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유모차를 끌고, 별이 손도 잡아 줘야 했다.
주변에서 좀 더 크면 가라고 말렸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아이들과의 여행을 다시 시도조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메고 가면 되잖아!’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15kg 정도 배낭은 거뜬히 메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길로 바로 배낭을 사고 짐을 싸보니 달이 키만큼 컸다.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배낭 여행하는 20대가 된 것마냥 가슴 설레기도 했다.
그렇게 배낭 메고 유모차 끌고 타이베이로 갔다.
마침 저가 항공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라 타이베이는 아주 인기 있는 여행기였다. 입국심사 하는 데만 최소 한 시간에서 두 시간까지 걸린다고 해서 그 시간을 별이달이가 견뎌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입국 심사할때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앞으로 가야 했다. 서둘렀지만 이미 먼저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끝이 없어 보였다.
"와... 어떡하지?"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다른 여행자들은 예상했던 부분인지 한껏 들뜬 모습으로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그때 멀리 보이는 직원 한 분이 나를보며 오라는 손짓을 헀다. "나? 나 맞아?" 의아한 표정으로 가까이 가니 유모차 표지판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유모차는 이쪽으로 가면 돼." 이런 게 희열인가? 내 뒤로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을 뒤로하고 나가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달아, 고마워! 너 덕분이야. 이번 여행 시작이 너무 좋다!"
사람은 늘 말을 조심해야한다. 여행 첫날 빠르게 입국한 덕분에 시먼딩 야시장을 구경하며 1930치킨을 사다 맥주까지 마시며 여유 있게 마무리했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행엔 늘 비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모차 때문에 유독 반갑지 않았다. 처음에 조금씩 내리던 비가 예류에 도착했을 땐 강한 바람과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 옷에 우산까지 준비했지만, 우산이 뒤집힐 정도라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었다. 별이달이도 비 옷을 입었지만 이미 옷은 다 젖었고, 더 큰 문제는 물 만 난 달이가 망아지마냥 신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따라다니느라 정심이 쏙 빠졌다.
"비 오는 날 비 맞고 돌아다니는 건 일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여행에서나 느낄 수 있는 묘미라고 해두자!"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진짜 정신승리자처럼 느껴졌다.
3박4일의 짧은 기간 동안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이런 걸 참고 견디며 여행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해본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힘들었던 순간조차 추억이 되는 걸 보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