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남긴 것

by 여행하기 좋은날

사람들에게 '처음'이란 단어는 특별하게 기억된다.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운전을 했을 때 등 많은 '처음'기억들을 갖고 있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첫 해외 여행지, 유명하다는 음식을 처음 먹었을때 맛과 감정 등은 특히 오랜 시간 기억된다.



평온했던 독일


독일은 내가 처음 혼자 갔던 곳이다. 힘들었던 회사 업무가 산재로 인정받아 3개월의 휴식이 주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여행을 준비했다. 늘 친구와 가족이 함께였던 여행을 막상 혼자 떠나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혹시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 여기저기 연락해보았지만 2주간의 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은 없었다. 차선책으로 인터넷 카페에서 동행을 구할 수 있다고해서 기웃거려봤지만 모르는 사람과 계획을 짜고 함께하는게 쉽지 않아 포기했다.

결국 혼자 가야겠다는 결론에 유럽 국가 중 그나마 안전하다고 알려저 있는 독일을 선택했다. 독일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관광지는 아니다. 맥주와 건축 등이 유명하긴 하지만 유럽여행을 자주 갈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파리,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비해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갖기 힘들다. 하지만 그 부분이 휴식이 필요했던 내겐 오히려 좋았다. 관관객이 많지 않아서 조용했고, 사람들은 투박해 보였지만 친절했다. 소매치기 걱정 없고, 깨끗한 도시들, 공주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성 주변을 산책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업무에 지쳐 있었던 내게 휴식이었고, 실패했다고 자책했던 나 자신에게 혼자 해낸 여행은 자존감을 높여주기 충분했다. 3개월의 휴식 후 다시 회사에 돌아갔다. 이후에는 일에 대한 재미도 느끼고, 간간히 휴식을 위해 여행하며 지금의 나를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영어유치원 싫어


별이와 함께 갔던 두 번째 여행지 사이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편 없이 아이와 둘이서 가는 여행은 내겐 휴식 같은 여행은 아니다. 고작 네 살이었던 별이는 혼자 밥 먹는 것도 완벽하지 않았고, 씻기고 옷 입히기 등 장소만 옮긴 제 2의 독박육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이판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다. 왠만한 호텔에는 아동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엄마들도 선호하는 여행지다. 나도 이왕 휴양지에 왔으니 조금의 휴식을 즐겨볼 겸 처음으로 아동돌봄서비스를 예약 후 이용했다.

두 시간 정도의 돌봄서비스는 실내.외 활동이 있는 꽤 알찬 구성이었다. 돌봄서비스를 보내고 로비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실외프로그램은 로비 앞 수영장에서 진행됐고, 선생님을 따라와 수영을 배우는 별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돌봄시간이 끝날 때쯤 데리러 가니 교실이 아닌 교실 밖 벤치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별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코끝이 빨개진 별이가 말했다. "영어유치원 싫어!"

그 말을 하는 별이는 속상한 마음이었겠지만 내겐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곳에서 선생님과 여러 아이와 어울리는 게 별이에겐 힘들었던 것 같다. 돌봄서비스가 하나의 즐길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출근하며 보낸 유치원에 불과했구나 생각하니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처음엔 웃으면서 들어가 만들기도 하고 그림 색칠도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것 같다. 여행을 하면 다른 나라의 언어에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는데 그 이후 별이에게 영어는 배우고 싶지 않은 언어가 되었다. 요즘도 "엄마가 이상한 영어유치원 보냈었잖아 나 기억나!" 라고 얘기하는 별이가 귀엽다.




엄마, 독일사람 냄새나


향기의 기억이 사람들에겐 굉장히 오래 가나보다. 엘레베이터나 대중교통 등 밀폐된 공간에 들어서면 달이에게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다. 주변에 누가 들을까 "쉿, 그런 얘기하면 안돼"라고 얘기하지만 달이에게 남은 독일의 가장 큰 기억이 냄새라는게 재밌다.

별이 달이와의 첫 유럽여행은 독일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갈 때쯤 유럽여행을 계획했는데 미성년자가 예방접종 하지 않고 입국이 허용되는 나라가 몇 개 없었다. 다른 나라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맞추면서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 엄마가 왜 독일을 좋아하는지 보여줘야겠다 생각하며 각자 독일에서 꼭 가고싶은 곳을 골랐다. 별이가 선택한 노이슈반슈타인성과 달이가 선택한 BMW박물관을 갈 수 있도록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으로 이어지는 로멘틱가도를 여행했다.

시작이었던 뷔르츠부르크 마르엔베르크요새에서 보이는 빨간 지붕의 풍경은 프라하성에서 보는 풍경만큼, 아니 그보다 더 멋진 풍경이었다. 혼자 갔을 때 햇살 좋던 알테마인교 다리 위에서 와인을 마셨던 식당에서 별이 달이와 함께 밥을 먹고 Four Tubes Fountain 앞 가게에서 후식으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가 좋아했던 독일의 모습을 별이 달이와 공유하며 2주 동안 여행했다.

8월의 독일은 그랬다. 호텔엔 에어컨, 냉장고조차 없어 땀을 흘리고 미지근한 물을 마셔야했다. 독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그리고 이동을 하기 위해 하루에 많게는 4시간의 기차를 타야했다.

호텔의 엘레베이터는 한국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도시를 이동하는 기차는 출근길 서울지하철만큼 사람이 많았다. 에너지 절약에 진심인 독일이기에 한여름 기차에 한국 같은 추운 에어컨은 기대할 수 없었다. 땀 냄새가 진동했기에 쾌적한 환경은 바랄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나는 소시지 굽는 냄새, BMW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와 먹었던 피자냄새, 노이슈반슈타인성에 오르기위해 탔던 마차의 말냄새 등 많은 냄새를 경험했는데 유독 달이에겐 독일 사람들의 땀냄새가 남았다. 남들이 느낄때는 좋지 않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달이가 독일사람 냄새가 난다고 얘기하면 모두 함께 웃으며 독일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얘기하기 시작한다. 여행은 어떤 기억도 버릴 것 없이 소중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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