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겨울에 더 추운가보다. '큰 건물이 감싸지 않아서 그런거야.' 나는 생각했다. 겨울에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따뜻한 방에 누웠다. 겨울이불은 엄청 무거웠다. 그 무게에 열이 세어나가지 않아서 따뜻한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방에 누워있으면 보일러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쪼르륵 들렸다. 같은 방이지만 더 찬 곳이 있고 따뜻한 곳이 있어서 따뜻한 곳에 발을 대고 누웠다.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 쓰고 엎드려서 라디오를 들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문세의 별밤'이 여기는 잘 잡히지 않았다. 나는 라디오 안테나를 최대한 뽑은 뒤 여러방향으로 돌려 보았지만 결국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손으로 잡고 있는 것이었다. 손으로 잡고 있으면 나름 주파수가 잡히는 듯했다. 방향을 잘 잡으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살짝 어딘가에 기대놓고 절대로 손을 대면 안됐다.
빈 공테이프를 끼고 좋은 노래가 나오면 얼른 녹음 버튼을 눌렀다. “00노래 듣겠습니다”하고 바로 노래가 나오는데 DJ가 그때 멘트를 하면 짜증이 났다. 잠깐이라도 딴 짓을 하면 녹음을 놓칠 수 있었다.
언니는 항상 몸이 차가웠다. 특히 겨울이 되면 손과 발이 너무 춥다고 했다. 교회에서 반주를 하는 언니는 팔부분을 길게 내려 손을 감싸고 피아노를 친 뒤 계속 손을 호호 불었다. 발도 계속 비비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따뜻해지지 않는 언니는 우리 집에서 가장 따뜻한 것을 찾아냈다. 나였다. 몸이 따뜻한 나는 조금이라도 발이나 배가 차가우면 설사를 했다. 그래서 항상 따뜻함을 유지하는데 언니는 이불 속에서 따뜻하게 데펴진 나를 보고 집에 오면 그 차가운 몸을 비볐다. “너무 추워서 그래”하며 군고구마처럼 따뜻한 나의 살에 차가운 몸을 대곤 했다. 빈틈이 없이 이불로 막았지만 대부분은 그 차가운 손에 당한 뒤였다.
민정이가 “눈썰매 타러 가자”하고 말했다. 엄마랑 시장보 러 가는 길에 시내 옆에서 눈썰매장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 얼마 챙겨?”하고 물으니 “돈 필요 없어 그냥 와”하고 말한다.
집에 가보니 스키복은 이미 작아서 발목이 드러났다. 그냥 가지 뭐... 민정이는 집 앞에 찾아와서 웃으며 손에 든 비료푸대를 보여주었다.
“이게 썰매로는 최고야”하고 말하며 나에게 한 개를 건네주었다. 나는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민정이가 “양말을 이렇게 바지 위로 올려 신어. 안 그러면 눈이 바지 안으로 다 들어가”하고 말했다.
시내로 가는 길 옆에 작은 산으로 갔다. 좁은 길이 나왔는데 계속 가보니 이미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눈이 오면 매년 모이는 장소인가보다.
우리는 비료 푸대를 들고 자연스럽게 줄을 섰다. 이미 앞에 온 아이들이 만든 눈길이 반질반질해 보였다. 아이들은 비료푸대를 잡고 한명씩 내려갔다. 비료푸대를 놓쳐서 그대로 눈길에 미끄러져서 엉덩이로 눈썰매를 탔지만 모두들 깔깔대며 웃었다. 모두들 바지에 엉덩이 부분이 다 젖었있어서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민정이는 비료푸대를 타다가 놓쳐서 옆으로 넘어졌다.
“바닥에 돌이 있었나봐. 아파”하고 말하며 민정이는 웃으며 엉덩이를 잡았다. 나도 비료푸대를 꽉 잡고 썰매를 탔다. 생각보다 속도도 있어서 잘 미끄러졌다. 막판에 비료푸대를 놓치고 나도 엉덩이로 썰매를 탔다. 나를 보며 민정이가 깔깔대고 웃었다.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여러 번 반복해서 썰매를 탔다.
잠시 뒤 언니가 보였다. 언니는 교회 언니, 오빠들이랑 온 것 같았다. 언니도 쭈뼛쭈뼛 서서 비료푸대를 타는 듯했다. 바보. 장갑도 안 가지고 왔네. 손도 맨날 차면서. 나는 언니에게 가서 장갑 한 개를 빼주었다. “두 개 다 줘.” “싫어”하고 말했다.
잠시 뒤 눈싸움이 벌어졌다. 두 편으로 자연스럽게 나눠져서 서로를 공격했다.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는 눈을 뭉치지도 않고 그대로 잡고 내 머리에 뿌렸다. 나는 얼른 큰 눈덩이를 발견했다. 눈이 얼은 그대로의 상태를 크게 떼어내서 언니에게 갔다. 언니는 “하지마. 하지 말라고 했다”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언니에게 눈을 던지고 도망을 갔다.
집에 돌아온 나와 언니를 보고 엄마는 “둘다 왜 이래? 어릴 때도 이러고 안 놀았는데”하고 말하시더니 비료푸대를 든 손을 보고는 알겠다는 듯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