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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Oct 30. 2024

내 코 낮고, 내 코 복코

내게 콤플렉스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낮은 콧대일 것이다.

학창 시절 안경을 쓰게  이후,  안경을 벗으면 안 그래도 낮은 콧대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아 렌즈도 잘 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띌 정도로 낮은 것은 아니지만 높은 코를 부러워하는 마음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 부류였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데 스스로 내 코를 낮다고 먼저 말하 했다.

입버릇처럼 자신의 코가 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 있다.

그건 바로 복 들어오게 생겼다는 말이었다.  

"네 코는 복잖아, 조금 낮으면 뭐 어때! 복 들어오게 생겼으면 그게 더 좋은 거지."

하지만 내게 그 '복코 '라는 말은 그다지 위로가 돼 주지 못다. 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너는 꼭 복받을 거야"라고 말해주던 변 사람들의 예언대로라면 어차피 복은 내게 넘치게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렇게 낮아 보이지 않는다" 라거나 " 네가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라는 말이 훨씬 음에 와닿았다.


낮은 코에 대한 콤플렉스는 높은 콧대를 가진 사람을 더 선호하는 내 취향에 영향을 주긴 했나 보다. 문득 함께 사는 내 남자의 코를 쳐다보다가 든 생각이다.

남편의 콧대 보통 사람들보다 높고, 덕분 세 명의 딸 모두가 나만큼 낮은 콧대를 가진 아이는 없다. 간 승리였다. 직접 내 코를 높이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2세들에게 같은 문제 고민을 대물림하지 않았으니 덩달아 내 콧대까지 높아진 것 같은 진짜 위로 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둘째 아이는 내게 콧대가 높아질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어 주었다.

기회는 대낮에 별이 보일 만큼의 고통과 함께 무나 갑자기 찾아왔다.


아이들은 스스로 걷기 전, 다리에 힘이 생길 때까지 사람의 손이나 물건을 붙잡고 서서 노는데, 그때 나는 침대에 앉아 둘째 아이 손을 잡아주며 바로 그 놀이를 하게 해주고 있었다.

 손에 의지한 채 발을 동동 구르웃는 아이를 보며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이 나도 함께 웃으며 행복했다. 대 탄력이 좋아서였을까? 발을 구르며 놀던 아이의 머리가 예상보다 훨씬 높게 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그때, 내 코에서 플라스틱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분명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만화를 볼 때 이런 장면에서는 주로 눈동자 팽이 돌아가듯 뱅글뱅글 돌아가고 머리 위로는 별이 떠다닌다.

아픈데 아이가 놀랄까 봐 소리도 지르지 못했고, 아직 뛰고 있는 아이 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같은 곳을 다칠까 봐 두려워 다른 한 손으로는 코 감싸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함께 사는 여동생을 불러 아이를 부탁하고 곧바로 병원을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코 뼈에 금이 고 했다.

'옳거니, 이렇게 된 건 하늘이 내게 높은 코를 선물해 주시는 게 틀림없구나. 의사 선생님은 이제 곧 내게 코를 수술하라고 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만 내 코는 고작 뼈에 금이 간 걸로 바뀔 운명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원망스럽게도 해줄 게 없다고 하셨다.

금이 간 코 뼈는 특별히 치료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낫는단다. 약도 하루밖에 처방해 주질 않았다.

'콧대 높아 보이게 깁스라도 해 주시지. 깁스로 된 가짜 코라도 얼마 동안은 높아 보일 수 있을 텐데.'


별이 보이는 아픔과 함께 왔던 기회는 아이와 잘 놀아주는 푸른 멍 자국을 훈장처럼 선사하고 이렇게 날아갔었다.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때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며 푸념을 하고,  서울에서 홀로 대학교에 다니는 둘째는 "지금이라도 그냥 하세요!" 이런다.

사실 무서워서 못하겠다.

'어린 딸아이 머리에 부딪히고도 별이 보였는데, 수술할 땐 얼마나 더 아프겠어!'

겁도 많은 나는 그냥 생긴 대로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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