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Gut

삶을 인도하는 내면의 소리, 직관

by 서본

2026년도는 내가 26살이 되는 해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에겐, 만 나이 24살이라는 마땅한 대체어가 있다. 하지만 난 이미 24살을 지났음을 안다. 내가 만 나이를 주장하고 다니는 것은 현실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취업과 연애, 경제적 독립 그런 것들 말이다.


이러한 사고의 기제를 알기에 스스로를 24살이라고 말하는 순간, 타인을 속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러나 나에게 26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고, 입 밖으로 내뱉기는 더 어렵다.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게 되며 미래는 두렵고 불안해지는 유약한 상태의 인간이 나뿐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올해 나는 교육대학교의 4학년 학생이 된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임용고시를 준비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내 주변 대부분의 동기들도 스터디를 짜고, 교재를 사고, 인강을 들으며 임용 공부에 진입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임용고시에 별다른 뜻이 없다.


이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럼 너는 뭘 할 건데?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4년 동안 던져왔다. 초반의 1, 2학년은 여전히 의료계에 종사하고 싶은 미련이 남아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수능공부를 해서 수능을 아주 잘 봐서 약대와 한의대에 진학하고 싶은 꿈, 그게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 내 삶의 목표였다.


3학년이 되어 맞이한 2025년은 조금 다른 해였다. 반복된 노력의 좌절에 열정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나는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한국의 교육현황과 입시제도에 넌더리가 난 나의 내면에는, 해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불씨처럼 타올랐다. 교환학생과 해외 대학원과 로스쿨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뭘 하나를 하더라도 학점이 중요한 요소로 반영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학교 공부에 노력을 기하기 시작했다. 2학년까지는 매 수업마다 결석을 3번씩 감행하고 수능 공부를 했던 내가, 3학년이 되어서는 모든 수업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평점은 눈에 띄게 상승하였다. (이전 학점이 너무 낮아서 소생하는 것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은 굉장히 자유롭고도 불안한 길이다. 곧은 심지와 실행력, 성실함, 책임감 등이 최소한으로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1, 2학년 때 수능 공부에 올인하며 학교 공부를 등한시한 것은 주류에서 벗어났던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훌륭한 입시 결과도, 학점도 얻지 못했고 3학년 때는 캠퍼스를 옮겨 다니며 밀린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너무나도 불안정했고,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혹자는 내가 교대를 재학하면서 반수를 병행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회는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다. 인생의 표지판과 같았던 학업적 목표를 이루는 것이 간절했고, 그것을 위해 투자한 지난 몇 년의 돈과 시간을 결과로 일구어내고 싶다는 오기가 들었다. 혹은 객기일 수도 있다. 학교 수업은 아무리 귀를 기울여 들어도 뇌 속에 남지 않고 다른 쪽 귀로 흘려나갔고, 강의실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버티는 몇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적성에 맞지 않는 교육론 수업보다는 내가 배우고 싶은 학문을 공부하며 남은 청춘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중 <흑백요리사 2>의 출연진들이 떠오른다. 미국 명문대학교의 토목 공학과 4학년 재학 중 자퇴를 하고 요리의 길을 택한 손종원 셰프, 예술적인 가풍을 따라 도예의 길을 걷다가 진로를 전향한 김희은 셰프, 서울예대에서 영화를 전공하다가 전통주 전문가가 된 술 빚는 윤주모(윤나라 셰프) 등은 자신이 속한 흐름에서 벗어나기를 고심 끝에 결심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끝없는 노력을 다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주류에 속한 길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안겨준다. 나의 경우에는 얌전히 임용고시를 공부하고, 제때 졸업하며, 제때 발령을 받고 초등교사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 그러한 메인 스트림에 해당하겠다. 큰 물살에 휩쓸려 흘러가는 것은 일종의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제공한다. 협동과 경쟁의 울타리 속에서 증명된 방향으로, 증명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증명된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데.. 이를 마다할 용기를 내기란 참 어렵다. 내 선택이 과연 옳을지, 두고두고 생각을 우려내는 것이다.


나도 주류에 속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껏 사실 나는 그 흐름의 선두에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교대에 진학한 것도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흐름에 올라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를 대치동에 내려놓은 2011년, 4학년이 되는 그 무렵부터, 나는 내가 속한 주류의 흐름에 동의했다. 그들이 바라는 삶의 궤도과 목표는 나의 꿈이 되었고, 내가 일구어낸 성과는 그러한 것들에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돈과 명예가 중요하고, 수단으로써의 인간관계가 중요하고, 사제관계 또한 이해에서 자유롭지 않은 그런 학군 속에서,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내가 속한 사회는 나에게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잘하는 일들을 떠올리도록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말을 잘했고, 그림을 잘 그렸고, 친구들을 잘 이끌었고, 영어를 좋아했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속한 곳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다. 나의 흥미와 적성과 그런 모든 것들은 내 진로와는 별개의 요소였고,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되지 않으며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항이었다. 우리는 국/영/수와 탐구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학교만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하기를 선택했다.


주류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고, 또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된다. 필히 실행되지 못하더라도 개인이 그가 살아온, 또는 살아갈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그 시기가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라는 생각과, 주체성을 잃은 지난 나날들의 과오를 뒤늦게 청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길이 나에게도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면, 내가 주인인 삶임을 알고 그것을 이끌 수 있는 용기가 더 컸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주류에서 벗어나기로 하는 것은 큰 용기를 요구하지만, 더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때이다. 다시 한번 <흑백요리사 2>의 출연진 중 손종원 셰프를 언급하고 싶다. 과거 그는 토목 공학과를 자퇴한 후, 패션과 요리의 기로에서 고민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실제로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합격하기도 했다는 그는, 결국 요리학교인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a)를 선택하여 셰프의 길을 걸었다. 그가 주류에서 벗어나 삶의 방향을 재설정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과 큰 용기가 수반되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가려는 길을 확신하기가 어렵다. 교환학생, 임용고시, 로스쿨, 대학원, 학원강사 등 다양한 길들을 떠올리며 노트에도 향후 계획을 적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부모님, 형제, 친구들, 가끔은 친척들까지 떠올리며 내가 속한 사회의 틀을 되새김질한다. 특히 퇴직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냥 내 뜻대로 인생을 전개해도 될는지 망설이게 된다. 이러한 이해관계와 함께 내 삶을 미리 설계하고 재단하는 말들을 듣다 보면, 수많은 사공으로 인해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순간도 많다.


영어 구절 중에, 'Follow Your Gut'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Gut는 소화를 위한 장기인 내장을 뜻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촉, 직감, 배짱’ 등의 뜻으로 쓰인다. 내장에서부터, 즉 몸의 깊은 데서부터 느껴지는 아주 직관적인 느낌을 지칭하는 것이다.


가끔씩 나는 어떤 일을 실행해야 할 것 같은, 혹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작년 초에 토익 시험을 본 적이 있다. 졸업 요건도 충족해서 볼 필요가 없는 시험이었는데, 자존감이 한창 낮아졌던 때 나의 능력을 증명해 낼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껴 자발적으로 응시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왠지 하고 싶던 그 직감을 따라 본 시험이, 지난 여름 해외교육연수 합격에 큰 역할을 다했다. 평균 4점대 안팎의 학점을 보유해야 했는데, 나의 경우 형편없는 2.85점의 학점을 토익 고득점으로 커버할 수 있었고, 이후 캐나다에서 보낸 2주는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행복한 경험 중 하나가 되었다.


내 내면의 소리는 나만이 들을 수 있다. 현실적인 것들을 떠올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지 않아야 할 일인데도, 자꾸만 마음속으로는 그 길을 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면. 이유는 모르지만 내면에서 피어나는 열망이 있다면. 낯선 분야에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 일을 떠올렸을 때,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행복한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나의 직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에 대해 타인을 설득시키거나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계획한 일들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마련해 놓아야겠다. 도전에는 일정한 대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차피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는 점들을, 내면의 소리를 따라 미리 찍어보는 과정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인생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모든 이들의 첫 발걸음과 용기를 응원하며 기록을 마친다.



[출처] [Daily Expression] "직감, 촉"을 나타내는 표현 "Gut" : My gut says, Follow your gut, Gut feeling, In my g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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