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고 자라온 곳은 부산이어서, 부엌과 맞닿아있는 베란다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그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쭉 살아왔기에 바다를 보는 일은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익숙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식탁에 앉으면 바다가 흘러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밥을 먹다가도 멍하니 바다의 물결을 바라보곤 하거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면 침대에서 베란다로 잠시 나와 앉아 졸음이 올 때까지 일렁이는 밤물결을 보다 자곤 했다. 이렇게 속히 말하는 물멍-물결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라보는 멍 때리기-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바다, 특히 물결을 무의식적으로 관찰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물결들이 바다 위에 패턴 같이 새겨져 있다고 느꼈고, 그 패턴이 시간대별로, 또 환경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색무취의 액체로 잘 알려져있는 물의 특성과 다르게, 흐르는 물들은 저마다의 물결을 가지고 흘러간다.
밤의 물결은 인공적인 빛과 물결이 섞여 일렁이기에 그 짜임이 엉켜 있는 편이어서 비교적 도돌도돌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유속이 빠른물은 뾰족하고 직선적인 물결로 유속이 느린 물은 둥근 모양이거나 완만한 곡선 모양으로 둥둥 흘러간다.
물에서 각각의 물결 모양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평면적으로 물결을 표현해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