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냥이 Nov 08. 2023

[4] 눈이 웃지 않는 여자

갑자기 강사가 되었다. _ 왜 강사인가

카톡.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마셔볼까 하는데 메시지 하나가 온다. 친구다. 아주 오래전 사진을 어디서 찾았는지 사진 속 우리는 예쁘게 웃고 있었다. 십 년 전이다.        


   "어려 보이네..."     


말끝이 흐린 건, 웃지 않는 내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표정이 살아 있는 친구의 앳된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 옆의 나는 눈이 웃지 않는다. 입 꼬리가 올라가 있는데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공허한 눈이 당시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행복한 척 웃고 있었지만, 실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의 내 이미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참하다' 정도일 것이다. 친구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것이 분명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늘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나를 ‘행복한 선생님’이라 불러주던 중학생 남자아이가 있을 정도였다. 행복한 얼굴 뒤로 나는 감정을 철저히 숨겼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친구는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당시 친구의 눈에 비친 나는 '프랑스 여자' 같았다고 한다. 갑자기 프랑스 여자라니. 하얀 얼굴에 까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프랑스 여자'는 예뻤다고 한다. 예쁘고 슬퍼 보이는 여자였다나. 눈이 슬퍼 보인다는 말을 그 당시 들었다면 분명 울었겠지. 그즈음 친정이 어려워졌었다. 부모님은 갈 곳이 없어 우리 집에 함께 살고 계셨다. 불행은 한 번에 온다고 하던가. 아빠는 우리와 울산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고 한 달 만에 혈액암 진단을 받으셨다. 앞이 캄캄했다.    

  

장인 장모와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먼저 제안해 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함께 가져야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시댁 눈치를 보느라 일하며 아이 키우는 일에 힘든 내색도 못했다. 엄마는 밤새 모텔 빨래를 하며 병원비를 마련하셨고, 아침에 돌아와 아이들 밥을 챙겼다. 모두가 지쳐가던 그 때에도 전남편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서운하고 미워도 말을 삼켰다. 그래도 부모님 눈치 안주는 사람이니까.     


불행을 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가끔 아주 행복한 척 SNS에 사진을 올리거나, 여유 있는 척 허세를 부려서 나의 불행을 감추었는데 효과가 좋았다. 즐거운 척 늘 입 꼬리에 신경을 쓰고 미소를 유지하려 애썼는데, 눈이 웃지 않는 줄은 몰랐다.     

마흔이 넘도록 내 눈가엔 주름이 하나도 없었다. 간혹 누군가 “어떻게 주름 하나 없어요?” 라고 물어오면, 자세히 보면 있다고 겸손을 떨곤 했다. 어떤 날은 진실을 살짝 알려주고 싶었는지 “잘 안 웃으면 돼요~”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다들 농담이려니 웃어넘겼다. 나도 웃었다. 그래도 어려 보인다니 그거라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아무도 몰래 짧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다들 복 많은 행복한 여자 정도로 알고 있기에 그냥 두었다. 머 나쁠거 없잖아.      


사진을 보며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문득 거울을 보았다. 찡긋 웃어본다. 눈 옆에 주름이 잡힌다. 눈에 힘을 더 주어 주름을 만들어보았다. 크큭. 뭐하는 짓인가 웃음이 났다. 몇 년 사이 얼굴이 달라 보인다. 이렇게 많이 웃는 사람인지 몰랐다는 친구들의 말에 더 열심히 웃는 것도 같다. 주름이 많아지고, 웃음이 많아지고, 나이도 많아졌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예쁘다.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그리고 나의 이런 변화가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어서 더 좋다. 엄마가 행복해지면 아이들도 행복하다.


내가 나를 조금씩 보이고 예전의 잘 웃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어서이다. 일을 멈추고 내 마음이 힘들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졌을 때 상담을 처음 경험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힘들었겠다 말해주는 상담사 앞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쓰며 울었다. 조금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해제 시켰는지 궁금해졌다.      


6개월 뒤인 2019년 하반기에 울산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관에 개설된 심리상담사 과정을 등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안을 이론으로 정리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한 학기 과정을 들으며 울산대학교 상담전공 교수님들과 심리학의 기초를 공부했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게 된 집단상담에서 무엇이 하고 싶은가 질문 받았다.      


“이혼 하고 싶은데요.”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의 뜨악한 표정에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바람입니다. 진짜 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굳이 이런 소리를 할게 뭐람. 나는 과장된 웃음과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그 순간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모두가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는 그 순간 실없어 보일게 뭐냐구!! 마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진짜 속마음을 들켜버린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 학기 과정을 마치고 나는 교육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이왕 시작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5학기를 잘 보내고 나면 내 마음도 치유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생겼다. 누군가 상담 공부를 왜 하는지 물으면, 노후 대비라고 했다. 이건 어느 정도 정말이었다. 노후를 마음 편히 보내기 위한 대비였으니 말이다.     


‘상담 공부하면 이혼한다.’는 말이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욕구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더라는 카더라일 뿐이니,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나의 경우 상담을 공부하면서 나의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고, 나를 찾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는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궁금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어느 날, 엄마는 췌장암 선고를 받으셨다. 


그리고 내 마음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질 무렵 엄마가 돌아가셨다. 

작가의 이전글 [2] 번아웃 - 사라지고 싶은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