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눈이 웃지 않는 여자

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_'나'

by 꿈꾸는 냥이

내가 이혼한 여덟 번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후회와 연민으로 스물두 살에 멈춘 나는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잊고 산건 세 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품위, 웃음, 그리고 걱정하는 마음이다.




'품위' _ 욕쟁이 엄마의 현타


엄마! 학교 가는 동안 욕을 몇 번을 하는 거야!!



어느 날 아침 둘째가 뒷자리에서 타박을 했다. 대체 욕을 왜 그렇게 많이 하냐는 딸의 말에 겨드랑이 아래가 저릿저릿했다. 부끄러웠다.


"ㅋㅋㅋㅋㅋㅋ 아니~ 저 차가~. 아니다. 안 할게!" 태연한 척 해도 목소리에 자신이 없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욕을 잘했지? 화가 나서 하는 욕도 아니었다. 놀라도 @#$, 웃겨도 @#$, 심지어 너무 맛있어도 @#$ 욕이 나왔다.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술술~


"얘들아, 나 이제 욕 끊는다. 딱 9월 28일까지만 하고, 29일부터 우아하게 살 거야~"


내 말에 친구들이 웃지도 않았다. 귀담아듣지도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나를 못 믿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


가장 고급스러운 결혼이란
심리적인 성장을 극대화하는 결혼이다.

아내, 남편, 아이들 서로가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비슷한 속도로, 긍정적으로 진화하는
결혼생활을 말한다.

공동 성장이라는
아름다움을 이루어 내는 결혼,

'마음과 인격의 진화'를 추구하는 결혼,
이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결혼이다.

임상심리 전문가/ 김 선희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 원장은 '마음과 인격의 진화'를 추구하는 결혼을 가장 고급스러운 결혼이라고 말한다. 가족 모두가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긍정적으로 진화를 해야 하는데, 부모가 품위를 가지지 못하니, 건네줄 선함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 단골 헤어숍 원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냥이 씨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아나운서 같아~ 아무 말이나 또 해봐요~"


그렇게 들렸던 이유는 정말 아나운서처럼 말해서가 아니었다. 아마도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고지식한(고전적인) 단어의 선택 때문이었을 거다. 친구들 사이에 흔히 부르던 "이 년아~"라는 말도 2년 전까지 내 입에서 나온 적이 없다.(지금은... 노코멘트하겠다.)


그런데!! 이제 딸이 욕을 중단시켜야 할 정도라니!!


아무 때나 튀어나오는 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정말 습관이 되어 버린 거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가장 문제는 그런 내가 맘에 안 든다는 거였다. 그날 아침의 나는 10분 운전하면서 10번 욕하는 '품위 없는 사십 대 여자 사람'이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품위가 없어 아이들 앞에서도 부부가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건지, 그렇게 계속 싸우다 보니 품위라는 게 바닥이 난 건지 이젠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원래 욕쟁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욕쟁이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쫌! 우아~하게!!




'웃음' _ 눈이 웃지 않는 여자


얼마 전 친구가 보내준 10년 전 사진 속의 우리는 참 예뻤다.


"어려 보이네..."


표정이 살아 있는 친구의 앳된 얼굴과 그 옆의 나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분명 웃고 있는데 내 얼굴은 왜 밝아 보이지 않을까.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옅은 미소와 대조되는 웃지 않는 눈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당시의 내 이미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참하다' 정도일 것이다. 친구들이 들으면 콧웃음을 칠 것이 분명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늘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행복한 얼굴의 가면을 쓰고 나의 감정을 철저히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눈빛을 바꿀 순 없었나 보다.


친구를 처음 만난 건 13년 전이다. 같은 학원에서 동료 강사로 만나 지금은 매일 톡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으니 우리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려나. 맞니 친구야?


당시 친구의 눈에 비친 나는 '프랑스 여자' 같았다고 한다. 일본 여자도 아니고 갑자기 프랑스 여자라니 역시 엉뚱한 친구다. 얼굴이 하얗고 까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프랑스 여자'는 예뻤다고 한다. 예쁜데 슬퍼 보이는 여자였다고..


이 말을 그때 들었다면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즈음 친정은 망해서 부모님이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었고, 아빠는 이곳에서 취직하시고 한 달 후 혈액암 진단을 받으셨다. 장인 장모와 한 집에 살아주는 남편이 고마웠고, 부모님이 남편의 취한 모습을 자주 봐야 하는 건 싫었다.


같은 사람에게 고마움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는 게 가능하다. 내가 그랬다. 전남편은 분명 좋은 사람이다. 동시에 나쁜 사람이다. 이런 양가감정을 품고 살아가다 보니 입은 웃고, 눈은 웃지 않는 내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팔자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져도 눈 옆은 깨끗했다.


주름이 없는데 하나도 좋지 않았다. 웃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까 신경 쓰였다. 행복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니란 걸 들킬 것 같았다. 눈가 주름은 없는데, 이마는 가로 주름이 많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엔 깊은 주름 몇 개가 더해져 이마를 드러낼 수 없었다.


자다 깨면 미간에 힘을 가득 주고 있는 날이 늘었다. 미간 사이에 세로 선이 보였다. 얼굴은 많은 걸 보여준다. 나는 가면을 썼지만, 사람들 눈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항상 웃고 있었지만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는 친구의 말에 그때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내 아픔을 꺼내 놓을 수 있다. 타인의 위로와 도움에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눈 옆에 주름이 아주 많아졌다. 일 년 만에 3살을 먹어 버린 것 같다. 글을 쓰며 사진을 다시 보았다. 눈이 슬픈 나는 매력이 없다. 자글자글 눈이 웃는 지금이 훨씬 예쁘다!




'안아주기' _ 걱정하는 마음


부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이다. 결혼 안에서 부부는 편안함을 느끼고, 건강한 관계 에너지를 형성한다. 질 데이비드 새르프는 우리가 만났던 모든 사례에서, 외도는 결함 있는 결혼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증상이며, 그것은 안아주기와 중심적 관계의 결핍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대상관계 부부치료_한국심리치료연구소, 질 데이비드 새르프 지음/이재훈 옮김)


나의 결혼은 '안아주기'가 결핍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숨겨져 있던 관계의 실체가 하나의 사건을 통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먼저 안아주지 않은 전남편과 내 사이엔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걱정하는 마음'이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음의 원리가 적용된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내가 밥을 먹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으면, 대체 무슨 공부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3학기를 다닐 동안 매번 묻고 잊었다. 강의하는 내 일에도 불만이 많았다.


학원과 집을 오가는 단순한 생활에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변화가 생겼다. 이제야 사는 것 같았던 나와 달리 계속 나가 있는 아내를 불안해했다. 관심은 여전히 없었고, 의심만 늘었다. 내가 공부를 하고, 사회를 경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가장 힘든 순간에 외면하는 남편에게 느꼈던 감정은 서운함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너를 이만큼 참아줬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분노였다. 내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나에 대한 분노였고, 이런 사람을 위해 계속 참아낸 바보 같은 시간에 대한 후회였다. 나는 내가 살아온 방식에 실망했고, 불편한 관계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려면 일단 멈춰야 한다. 화내기를 멈추고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