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_침묵
내가 선택한 소심한 복수의 방법은 '침묵'이었다.
대화에서 침묵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할 말이 정말로 없어서,
2) 원래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3)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불편함 없이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작은 일에도 잘 웃는 편이다. 이런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맞선 건 나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침묵은 고요하지만 그 자체로 공격이 될 수 있다. 불편한 당신과 할 말이 없다는 말을 차가워진 공기로 전달한다.
"우리 며느리는, 하루 종~~일 있어도 한 마디를 안 해요."
어머니 친구분이 놀어오셨던 어느 날, 아무도 묻지 않았음에도 어머니는 변명을 하셨다. 어머닌 내가 당신을 불편해한다는 걸 아셨던 것 같다. 그러니 "나 때문이 아니야, 얘가 원래 성격이 이런 거야."라는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좋은 시어머니 코스프레를 계속해야 했겠지. 이해한다.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그런데요 어머니. 저 말 엄청 많아요. 단지 할 말이 없었을 뿐이에요.'는 마음속에 잘 감춰두고 나 그저 배시시 웃었다. 순한 며느리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건 대체 무엇 때문일까. 외로워서?
듣기 싫은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멍해진다. 무념무상의 세계에서 혼자 놀기를 잘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머니! 제발 말씀 좀 그만하세요. 너무 시끄럽잖아요!!"
나도 모르게 소리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그러니 늘 어깨가 딱딱했다. 시댁에서 밥을 먹거나 외식을 하고 오는 날은 반드시 체했다. 돌아보니 저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올까 걱정했던 건 아주 오래전 기억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아마도 15년 전?) 명절 차례를 지낸 후 식사 시간이었다. 어머닌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많은 말을 쏟아내었다. 아들을 불러 밥을 먹으라고 하고, 조카들 이름을 모두 부르며 반찬을 챙기셨다. 며느리에게 밥 먹으란 말을 하지 않으니 사촌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와서 밥을 먹으라고 다들 불렀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사실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너무 시끄러워서 속이 안 좋았다.
작은 어머니께서 와서 앉으라고 하셔서 일단 자리를 잡았다. 어머닌 그때까지도 선 채로 이런저런 말씀을 늘어놓고 계셨다. 자리에 앉은 나에겐 아이들 잘 챙겨 먹으라는 말, 고기를 작게 썰어 먹이라는 말, 아이들이 엄마 닮아서 편식을 한다는 말 등을 쉬지 않고 하셨다. 그날 내 입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하.. 짜증 나.
헉!
너무 놀랐다.
소리가 나오진 않았지만, 누군가 내 입을 봤을게 분명하다. 다행히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낸 사람을 없었다. 어머닌 본인 얘기에 취해 못 보신 것 같았다. 휴우....(그때 다들 모른 척해줘서 감사합니다. ㅠ.ㅠ)
그 후로 난 입을 아주 꼭 다물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거나,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긴장했다. 일부러 티브이에 더 집중하거나, 말소리가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으로 흘러나가는 상상을 했다. 멀리멀리 훨훨 날아가라~ 주문을 외우면 재밌기까지 했다. 머릿속에 턴테이블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꽤 도움이 되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기도 하고, 때론 애국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머릿속 음악을 집에서도 틀어야 했다. 집에서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침묵의 대상이 남편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늘 반가웠다. 졸졸 따라다니며 그날 아이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줄줄이 늘어놓던 나였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대화가 줄어드는 건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대화가 줄어들면 문자나 전화를 거는 일도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평소에 나누는 대화가 없으니 공유하는 일상이 없고, 궁금함도 없었다.
12시가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언제 오는지 연락하던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어도 전화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했었다. 전화를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 언니들 남자 친구 따로 있는 거 아니냐고 한집에 사는 가족이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었다. 남편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도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궁금하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나랑 상관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다른 여자와 있다고 해도 도리를 다 하지 않는 남편과 사는 내가 한심할 뿐 남편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 기대가 없는 사이에 할 말이 없다.
점심시간은 마치 알람처럼 전화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점심은 먹었는지 전화를 하지 않는다며 나를 비난했다. 동료가 아내에게서 전화를 받는 걸 보고 화가 난 것이었다.
"오빤 나 밥 먹었는지 물어본 적 있어? 그게 나한테 화낼 일이야?"
늘 내 전화를 귀찮아했던 사람이다.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걸었던 건 나였다. 귀찮다는 듯, "끊어라! 바쁘다."라고 하던 본인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20년 가까이 매일 하던 전화를 언젠가부터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쁜 것도 아니었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고 했던가. 사랑이 사라진 것도 감출 수 없나 보다. 용건 없이 밥은 먹었는지, 집에 별일 없는지 묻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내가 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일이 된다고? 더 이상 자신을 예뻐하지 않는 아내가 불안했던 걸까. 남편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 것에 화를 내느라, 아내가 어떤 슬픔을 겪는 중인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코로나로 사업이 잘 되지 않자 가족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었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날도 많아졌다. 아이들도 아빠와 대화를 피했다. 부부 사이의 침묵을 넘어 가족의 침묵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같은 학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이 선 본 남자와의 데이트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 남자는 직업도 좋고, 가진 돈도 꽤 많다고 했다. 키가 컸던 선생님에 비해 작은 게 흠이었지만, 선이란 게 조건을 보고 시작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두 사람이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는 스킨십 때문이었다. 몇 번의 데이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게 되었는데 너무 싫었다는 거다. 손을 못 잡는데 뽀뽀는 할 수 있겠냐며 걱정을 털어놓았다. 결국 그 선생님은 다시 선을 보러 나갔고, 그날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이번엔 뽀뽀를 할 수 있었나 보다.
이혼만은 피해보려고 각방을 쓰기 시작했었다. 방을 따로 쓰는 건 좋은 점이 많았다. 밤새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술냄새가 진동하는 방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운 마음이 줄어들었다. 밤에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잘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예민해져 있는 나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남편은 우리 집 가장 끝에 있는 내 방에 잠시 들러 인사를 하고 안방에 가서 자곤 했다. 사소한 다툼이 줄어들자, 집에서 마주치는 시간도 견딜만했다.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찍 퇴근해 게임을 하고 있던 남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색했다. 뽀뽀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편도 나도 마치 처음 보는 사람과 억지로 입을 맞추듯 온몸이 쭈뼛거렸다. 나는 물론이고 상대도 빠짝 얼어버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부부가 평생을 설레며 살 순 없다. 하지만 설렘이 전혀 없이 살 수도 없다. 연애 초기의 두근거리는 그 마음은 점점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을 채워 가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생각하거나 손이 닿거나 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감정 말이다.
이혼을 했다고 하면 묻는다.
"왜? 왜? 무슨 일인데?"
뭘 궁금해하는지 안다.
"바람 아니다~"
"아니야? 그럼 왜!"
"더 잘 살려고."
시시해졌는지, 믿지 않는 건지 더 이상 질문이 없다. 무슨 꿈같은 소린가 하겠지만, 정말이다. 집에서 별거하듯 살아볼까, 정말 별거를 잠시 해보면 우리 마음이 정리될까 고민했던 시간이 있다. 하지만 20대에 만나 20년 만에 손을 잡을 수 없는 사이가 된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결혼에 지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 사람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너무 오랫동안 힘들었다. 이제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랐다. 한 때 사랑했다는 이유로, 함께 아이들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평생을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니 상황이 다르게 보였다. 이혼이 우리 가족의 끝은 아니다. 앞으로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작'이다.
마치 절대 이혼만은 하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은 이혼 서류를 접수하자 마음을 정리한 듯 달라졌다. 내 목소리만 들어도 무섭게 화를 내고 대화를 거부했다. 상처받은 남자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부부는 남이라는 건가 서운한 마음이 잠시 생겼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경멸하고 미워하면서도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다른 여자를 사랑했더라면 이런 아픈 경험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조금 더 단호했어야 했던 순간이 많았다.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입을 다물거나 우는 걸론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스물일곱, 스물둘의 나이로 만난 우리는 마흔여덟과 마흔셋의 중년이 되어 헤어졌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사람과 다시 사랑을 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던 남자는 100킬로 가까이 살이 찐 적이 있다. 당뇨와 고혈압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신다고 한다. 큰 딸은 아빠가 건강한 생활을 한다며 좋아했다. 아이들 아빠가 잘 지내고 있다니 나도 좋았다.
힘든 일 년이 지났다. 아마 앞으로도 몇 년간은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들을 우리 모두 잘 이겨낼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리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와 그 사람도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 다른 인연으로 만났더라면, 어쩌면 잘 지냈을지도 모르는 시어머니도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자주 우시는 우리 아빠도 마음을 내려놓고 평온하셨으면 좋겠다.
전남편!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했던 고민으로 지금이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이혼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그동안 애쓰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을 전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결정하는 이혼이라면 반대입니다. 하지만 우린 더 잘해보려고 수많은 밤을 고민하지 않았던 가요. 그거면 된 거예요. 비록 오늘이 많이 힘들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답니다.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할 겁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를 걱정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 마음 덕분에 우리는 모두 잘 될 거예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