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떻게 힙합에 빠졌니
'삐비빅- 삐비빅-' 오늘은 정오에 첫 수업이 있다. 잠에서 깨어나 핸드폰을 켜보니 11시. 대충 눈을 비비고 일어나 베란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건이 베란다에 걸린 탓이다. 그 덕에 우중충한 날씨를 보고 우산을 준비했으니, 나름 득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던 중, 스스로에게 건 긍정적인 암시다.
옷을 빠르게 챙겨 입고 문 밖을 나선 뒤, 자연스레 꺼낸 에어팟.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 삶이지만, 어느새 하루의 루틴이 되어 버렸다. 힙합으로 꽉 찬 플레이리스트, 뭘 선정할까... 새 걸 들을까 고민도 했지만, 통학길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듣는, 익숙한 노래가 좋다. 요새 많이 듣는 노래로 손가락이 향한다. 식케이와 Lil Moshpit의 <PUBLIC ENEMY>, 오늘의 첫 선곡이다.
해가 저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딱히 길을 걸을 때만 듣는 건 아닌 듯하다. 밥 먹을 때는 Pusha T의 <Come Back Baby>, 글 쓸 때는 이센스의 <Writer's Block>... 그냥 누워 있던 방금은 또 새로운 걸 들었다. 염따의 <살아숨셔>와 스카이민혁의 <그랜드라인2>. 매일같이 힙합을 듣는데, 이쯤 되면 이걸 루틴이라 할 수 있나? 하하. 이미 일심동체의 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
그럼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언제부터 힙합에 빠지게 되었을까?
이전부터 간간히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즐기지는 않았는데. 끽해봤자 쇼미 노래나 <시차> 같은, 대중적인 곡들만 찾았으니, 힙합을 좋아한다기엔 애매한 상태가 아닌가.
문득 궁금해져 생각해 보니, 변곡점은 아마 7월이 아니었을까. 빈지노의 <NOWITKI>, 그리고 이센스의 <저금통>이 발매된 달이다. 힙합은 안 들었지만 저 둘의 노래는 꾸준히 소비하던 중이었다. 그때부터 앨범 단위의 곡을 본격적으로 즐겼을 것이다.
힙합은 다양해서 좋았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래퍼마다 다른 톤과 빠르기의 랩, 그리고 제각각의 비트로 음악이 꾸밀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그래서 같은 힙합 범주의 노래여도, 내 하루 입맛에 따라 다른 색깔의 곡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힙합을 소비하며, 내 삶도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어떤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할지, 그리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은 뭔지. 엄밀히 말하면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도, 힙합의 덕이다. 확신에 가득 찬 삶과 솔직한 인생의 미덕, 예술적 영감, 내가 힙합에게 받은 보물이다.
어느덧 약 3년이 지났다. 여전히 힙합은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나를 달래주고, 나의 길을 제시해 준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들을, 여기에 털어놓으려 한다.
지나가는 당신도, 힙합에게 받아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