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니깐 크게 웃어'

K-FLIP+/탑승수속

by 이탁

예술은 뭐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내 지론이다.


아니, 지론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당연한 거 아닌가? 예술을 소비하는 이유가 뭔데? 감흥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창작물을 만든 예술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은, 제 몫을 하는 창작물이다. 반대로, 만듦새를 고려하지 않고 의미만을 앞세운 예술은 결코 좋게 평가받을 수 없다. 본래 시작점이 얼마나 원대할지는 몰라도.


힙합도 마찬가지다. 거기 당신, 힙합 하면 떠오르는 게 뭔가? 사회 저항?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나마 맞다. 유행과 트렌드? 그런 거 안 타는 클래식한 힙합도 많다. 솔직함? 힙합을 관통하는 핵심이긴 하지만, 어딘가 아쉽다.


즐거움이라고? 바로 그렇다! 음악을 듣자마자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야 한다. 힙합의 근원은 파티다. 힙합 음악이 달팽이 관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순간만은, 프레임이 갇히지 말고 재밌게 놀아야 한다.


글을 쓰던 지금, 내 귀는 어느새 창 밖의 소리를 빨아들이고 있다. 마침 축제를 맞아, 10cm가 마지막 곡으로 <스토커>를 완창 했다. 비록 몸은 도서관 안에서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으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흥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에어팟을 끼고, 핸드폰으로 <K-FLIP+>를 재생했다.



식케이, Lil Moshpit- K-FLIP+

식케이가 하이어 뮤직에서 나와 KC의 수장이 된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식케이의 이름 옆에는 '트렌디'하다는 호평과 '카피캣'이라는 악평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한 마디로, 호불호가 극심히 갈렸던 래퍼 중 한 명이었다. 더군다나, 재작년에 있었던 스윙스와의 디스전으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실추되어,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K-FLIP>과 그 디럭스 판인 <K-FLIP+>를 발매했다. 이로써 그는 비판을 환호로 뒤바꾸고, 명실상부한 국내 힙합의 선봉장이 되었다.


식케이, 그리고 그루비룸의 일원인 휘민의 합작 EP <K-FLIP+>.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앨범 트랙 전체가 한국 음악을 샘플링했다는 것이다. 앨범 소개글인 'Pay Homage to Legacy & Heritage'에 걸맞게, 힙합 트랙뿐 아니라 밴드 음악, 포크 음악까지, 폭넓은 장르의 음악이 레이지의 문법으로 재창조되었다. 오케이션의 <Lalala>를 샘플링한 <LALALA (Snitch Club)>,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를 샘플링한 <Lov3>, 김사월의 <달아>를 샘플링한 <INTERLUDE>와 <SELF HATE>, 실리카겔의 <Desert Eagle>을 샘플링한 <K-FLIP>까지. 거기다가 휘민의 천재적인 프로듀싱 능력이 합쳐지니, 본토에 꿀리지 않는 엄청난 사운드의 작품이 탄생했다. 과거 한국의 음악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라 할 만하다.


한국과는 거리가 먼 음악에 'K'를 섞은 식케이와 휘민, 그들은 '제대로 된 로컬라이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K-FLIP+>으로 대답했다. 심심치 않게 본토 논란에 휩싸이던 한국 힙합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집에서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 먹고 편하게 자란 아티스트가 공격적인 음악을 하는 게 맞냐는 논쟁이 불과 2년 전 일이다. 논리가 아주 없는 말은 아니다. 한국은 마약 거래와 총격 사건이 빈번한 본토와는 확연히 다르니까. 정말 처참하게 가난한 동네에 가더라도, 굴다리 아래에서 마약 거래를 하는 주민과 총알 자국이 뒤덮인 거리는 없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수많은 래퍼들 대다수가 '제대로 된 로컬라이징'에 대해 고민해 봤으리라.


<K-FLIP+>은 한국 힙합의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굳이 한국스러운 소리를 넣지 않아도, 한국의 풍경과 어투에 집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한국 힙합 본연의 맛을 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 음악을 샘플링한 비트는 물론이고, '휘민식 콤보는 참이슬 테라'같은 가사는 한국 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아 그런데, 솔직히 다 모르겠다. 거창한 이유 없이 직설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보자. 최고의 장점은 단 하나. 그냥 듣기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도, 고개가 앞뒤로 흔들리고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만약 음악의 질이 좋지 못했다면, 모두 물거품이 되었을 의도였다. 한국의 아티스트 둘이 구상했던 계획이 빛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음악 자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즉, 즐기려는 마음가짐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Huh, huh, huh, huh,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Huh, huh, huh, 나는 꿈도 있고 Crew도 있네
Huh, huh, huh, day 0들은 여전히 옆에
Huh, huh, huh, we go stupid, we go fuck it up and
Huh, huh, huh, 일류니깐 크게 웃어 We go
Ha, ha, ha, 노래나 만들고 불러 We go
La, la, la, 승리의 축배를 들어 We go
Shot, shot, shot, shot, we go

- <K-FLIP+>의 6번 트랙 <PUBLIC ENEMY> -

탑승수속.png 오케이션(Okasion)- 탑승수속

<Lalala>를 샘플링한 <LALALA (Snitch Club)>, 그리고 오케이션이 피처링한 <LUV3>를 듣고 나니, 오랜만에 그의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스포티파이에 오케이션을 검색한다. 참 슬프게도, 그의 앨범은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어떤 래퍼의 커리어보다도 아름답다. <탑승수속> 하나 덕에.


오케이션의 <탑승수속>은 국힙의 스테디셀러, 그리고 한국 트랩의 교과서다. 또한, 작업물이 하나밖에 없는 14년 차 래퍼에게 왜 아직도 사람들이 기대를 거는지 설명하는 앨범이다. '지금 한국 래퍼 80%는 오케이션의 아들이야'라고 한 이센스의 말처럼, 당시 <탑승수속>이 준 파급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 앨범으로 같은 시기에 트랩을 퍼뜨린, 일리네어 레코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트랩 장르를 한국에 전파했다. 빠른 비트 위에 돈과 성공을 주제로 한 랩을 했던 일리네어와는 달리, 오케이션은 몽환적인 비트에서 여유 있고 흐느적거리는 톤의 랩을 선보였다. 대중적으로 힙합이 제일 전성기였던 18-19년도 시절의 음악을 들어 보면, 어째서 오케이션이 이토록 찬양받는지 알 수 있다. 당시 한국 래퍼들의 랩에서, 7년 전 오케이션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단점이 없지는 않다. 사실 듣다 보면 살짝 올드한 감이 있긴 하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13년 전 앨범이니까. 더군다나 트렌드에 민감한 장르가 힙합이다 보니, 촌스러워지면 순식간에 사장된다. 아무리 예전에 잘 나가더라도, 구려지면 퇴물 소리 들으며 돌팔매를 맞는 곳, 그게 힙합씬이다.


그럼에도 <탑승수속>은 잊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전히 회자된다. 왜? 그냥 듣기 좋으니까. 그만이 낼 수 있는 감성으로, 분위기에 맞는 최고의 랩을 선보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탑승수속>이 발매된 이래로 수많은 오케이션 지망생들이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오케이션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오케이션의 왕좌는 지금까지도 굳건하다.


내 발걸음이 낭떠러지처럼
비춰도 밑거름
가을 다음 겨울도 지나간 다음
봄이 온다고 난 믿거든 어 믿거든 너무 믿거든
의심을 할 때조차 믿거든
넌 늦었다 말해 반올림 서른
하지만 난 이제 시작이거든

- <탑승수속>의 5번 트랙 <막지못해> -

우리는 매일마다 창작물을 마주한다. 핸드폰으로 오늘 나온 웹툰을 훑고,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고, 서점에 가서 수필집을 읽고,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들로부터 감정을 느낀다.


그런 것들을 볼 때, 뭔가 거창하게 생각하며 시작한 적 있는가? 예술에 몸 담고 있는 평론가 등의 직종이 아니라면, 드문 경험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성이 아닌 감성에 이끌려 예술에 닿는다. 슬픈 감정을 위로받고 싶어서, 신 좀 내고 싶어서, 생각 정리 하고 싶어서, 문화생활을 한다. 우리가 예술을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좀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가?


예술? 별거 없다. 사람들에게 감흥 주면 되지. 그리고 기쁨은, 가장 직관적이다. 사람들을 가장 쉽게,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게 끌어들이는 감정이다.


힙합 음악 어떻게 듣냐고? 별거 없다. 이런 것들 들을 때는 두 개만 명심해라. 가사 꼼꼼히 훑지 말 것. 왜 좋은지 이유 생각하지 말 것.


그냥 즐겨라. 일류니까.


추천곡:


<K-FLIP+>

LALALA (Snitch Club)

PUBLIC ENEMY (Feat. 노윤하, Wuuslime)

LUV3 (Feat. Bryan Chase, Okasion)


<탑승수속>

소문내

가는길이야 (Feat. Keith Ape)

Lalala (Feat. Beenzino)

막지못해


* 글쓴이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었습니다.

* 볼드체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해당 앨범 최고의 곡입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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