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w forever/Summer Grooves/IITE COOL
어제, 기숙사에서 처음으로 에어컨을 켜줬다.
가뜩이나 더웠던 날이라, 우선 반가운 마음이 컸다. 방구석 의자에 걸려 있는데도, 파도 소리가 저절로 들리다니. 파라솔 아래에 누워 있는 관광객이 부럽지 않다. 솔직히 과장이지만, 그만큼 만족스럽다. 원체 땀이 많고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기도 하고, 에어컨의 청량감을 즐긴 지 너무도 오래되었던 까닭이다.
희미한 위화감을 느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벌써 에어컨을 킬 때인가?' 하는 궁금증. 점점 에어컨에 손이 가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기인한 부유감은 아닌 듯하다. 캘린더를 보니, 어느새 5월 20일이다.
금세 지나가 버렸구나. 개학부터 지금까지, 참 많이도 저질러 놨다. 그리고 끊임없이 거두었다. 그렇게 달렸건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철쭉이 시들 거리는 점심, 땀방울을 닦아내다가, 별안간 들리는 노크 소리를 눈치챘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자. 늘 그래왔던 대로. 슬슬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지금은 비록 낮이고, 여름이 떠오를 정도로 덥지도 않다. 그러나 필자는 매미 소리가 울리는 밤하늘을 상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왜냐, <glow forever>는 여름밤의 감성에 제일 맞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감의 앨범 커버를 먼저 봤다면, 아래에 적힌 아티스트의 이름을 보고 조금 놀랄 수도 있겠다. '더콰이엇? 내가 아는 그 더콰이엇?' 더콰이엇의 무게감 있는 이미지, 그리고 돈에 밀접한 그의 음악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앨범의 속면 자체는 지극히 더콰이엇스럽다. 여전히 그는 지난 시절의 역경과 지금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겉면을 살펴보면, 저런 의문이 생길 만큼 새로운 시도로 그득하다. 당시 트렌드였던 싱잉랩과 오토튠 도입, 다양한 피처링진 활용 등 여러 도전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앨범의 유기성이다.
흔히들 앨범을 평가할 때, 앨범이 얼마나 유기적인지 분석한다. 여기서 '유기적'이라는 뜻은? 사운드, 그러니까 음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주제 의식이 자연스러운지를 말한다. 쉽게 말해, 앨범 전체가 하나의 노래 같다고 느껴지면, 그 앨범은 상당히 유기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앨범을 소설로, 트랙을 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glow forever>는 '유기적'이라는 단어에 제일 부합하는 앨범 중 하나다. 각 곡의 비트가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구분되어 있지 않다.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등으로 튼 다음 한눈팔고 있다 보면, 트랙이 바뀌었는지 인지하지도 못한다. 소리가 한 줄기로 '흐른다'는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막힘없이 흐르는 사운드 위에서 나열되는 그의 가사는, 여름밤에 잠겨 들게 한다. 실없는 농담부터 무거운 고뇌, 고독과 안녕, 그리고 성취감까지. 선선하지만 마냥 시원하지도 않은, 그런 여름밤 말이다.
생각에 잠겨보네 어느 여름밤
이젠 너무 멀어져 버린
그 어느 날
그 기록적인 빌어먹을 폭염과
내 작고 더운 방에 갇혀
밤새 녹음하던
나와 내 친구들 우리들의 꿈
이제는 어쩌면
나 혼자만의 추억일 뿐
- <glow forever>의 11번째 트랙 <여름밤> -
더콰이엇의 동기지만, 또 다른 여름을 기록한 한 래퍼가 있다. 팔로알토는 과거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수장으로서, 여름의 일상과 휴가의 행복을 <Summer Groove>로 노래했다.
힙합씬 내에서 상당히 성공한 래퍼지만, 팔로알토의 음악은 그 누구보다 일상에 가깝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평범함을 향한다. 소시민스러운 고민부터 스트레스, 소소한 행복, 지인들에 대한 고마움, 사회를 겨냥한 분노 등, 그의 음악은 누구나 공감할 법한 주제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주제는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담담하지만 여운이 남는 가사와 맞물려 빛을 발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 편히 듣기 좋은, 그런 음악이다.
아, 물론 그가 평범함을 지향한다는 뜻이지, 그의 음악이 평범하다는 뜻은 아니다. 팔로알토는 꾸준하게 작업물을 발매해 왔으며, 그때마다 항상 수준 이상의 질을 보장했다. 앨범마다 본인이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공감할 수 있도록 가공할 것인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Summer Groove>에서도, 그는 본인이 느낀 만족감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Summer Groove>의 주제는 '여름휴가'다. 그에 맞게 전체적으로 가벼운 톤을 지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맑고 청량한 비트, 그리고 싱잉랩에 특화된 래퍼들을 기용하여 형성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또한, 본인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음악과 균형을 맞추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렇게 들뜨고 개운한, 여름휴가다운 앨범이 탄생했다.
밴쿠버와 광저우에서의 황홀한 경험, 레이블의 CEO로서 겪었던 고충, 일을 마친 뒤 맥주 한 캔 따며 맞이한 해방감이 '여름'과 '휴가'라는 키워드로, 일상적인 노래로 재창조되었다. 못된 상사에게 사직서를 내던지는 상상을 하는, 여름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탈출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얼마나 가져야 채워질까 만족감?
광저우에서 요트 타고 흘러가던 밤
하늘의 별을 눈에 담고서 난 생각했지
죽기 전에 더 많은 걸 보고 가고파
-<Summer Groove>의 1번 트랙 <Joy>-
여름밤, 여름휴가 이야기도 했으니, 여름 그 자체에 집중할 때가 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여름'의 이미지란 뭘까? 시원하고, 쾌활해야 한다. DPR LIVE의 3번째 EP, <IITE COOL>은 우리의 이상적인 여름을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DPR LIVE 특유의 질감을 살려 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본명으로 활동 중인 그는, 소리에 색상을 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말 그대로 음악에 맞는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하고, 랩을 음악에 색깔처럼 칠하기도 한다. '여름'을 키워드로 내세운 <IITE COOL>에서, 그는 통통 튀면서도 가벼운 감각의 랩을 주로 이어 나간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앨범 커버나 뮤비 등에서도, 여름철에 가볍게 보고 넘길 수 있는 색감과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빈지노와 유사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표현 방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와 빈지노 간의 공통점, 필자는 그것을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 대중성이 성립하려면, 편하고 익숙한 음악이어야 한다. 반면 새롭고 정교한 작품을 우리는 예술성이 있는 작품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대중성과 예술성을 둘 다 잡는 과업은 엄청난 노력과 고민을 요구한다.
DPR LIVE의 음악은 늘 적절하고도 성공적인 타협을 이뤄낸다. 가볍지만 쉽지 않고, 특이하지만 거부감이 덜하며, 세심하지만 무심하게 들어도 좋다. 반복 재생을 눌러도 쉬이 질리지 않는다. 이는 <IITE COOL>에도 포함되는 특징이다. 특히나 대중성에 치중된 앨범이긴 하지만, 6 트랙이라는 적은 규모 내에서도 DPR LIVE만의 개성이 돋보인다.
글을 적다 보니 벌써 하늘이 검푸르게 변했다. 분명 깜깜하게 여겨야 할 하늘이건만, 최근 본 그 어떤 밤하늘보다 파랗다. 앞으로도 점점 더 파래질 것만 같다. 아마도 여름이 점점 다가온다는 신호겠지.
이미 언급했지만, 위 앨범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여름의 심상처럼, 가볍게 듣기 좋다. 주제가 그렇게 무겁지 않고, 멜로디 라인도 대중성 있으며, 피처링진도 다양한 편이다. 앨범을 즐긴다는 게 뭔지 알고 싶다면, 자신 있게 추천하고픈 작품들이다.
특히 여름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계절이 아닌가. 진저리 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꿉꿉한 열기로부터,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그래서 이맘때쯤 되면, 누구나 해방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 탈출의 순간에, 저 앨범들을 틀어보면 어떨까? 아니면, 침대에서 기분이라도 내보는 건?
나도 그럴 생각이다.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갈 마음도 없으니, 힙합으로 바다에 빠져보려 한다.
추천곡:
<glow forever>
귀감 (feat. ZENE THE ZILLA)
go yard (feat. Paul Blanco)
한강 gang (feat. Byung Un & 창모)
여름밤
<Summer Groove>
Joy (feat. Ted Park)
Pina Colada (feat. Owell Mood, OLNL)
Ma Maison (feat. Yumdda)
바다 건너 (feat. 수민, 사마-디)
<IITE COOL>
Venus
Hula Hoops (feat. beenzino, 화사)
Yellow Cap
* 글쓴이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었습니다.
* 볼드체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해당 앨범 최고의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