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으면서 눈물이 나왔다. 열다섯에 입는 교복을 육십에 입었다.”
“글 모르는 죄, 내가 지은 것도 아니지만 시집와 꼼짝 못 하고 기죽어 살면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내 나이 65세에 시작한 공부, 시간아 오지도 가지도 마라. 나는 너무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마음이 바쁜데 세월마저 쫓아오면 내 마음 어쩌라고, 나는 학생이라 공부할 게 많다. 시간아, 멈추어다오.”
“한글을 깨우치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예전에는 시장에 가도 물건만 보고 찾아갔는데 이젠 상점 이름이 보이니 신기했어요. 하늘나라에 있는 할아버지에게도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용인에서 일할 때 한글을 모르고 살아온 어르신을 대상으로 문해(文解)교육을 시행했습니다. 그러고 그 교육을 통해 배운 한글로 솜씨를 발휘하도록 해 시화전을 열었지요. 전시된 작품은 하나같이 어르신들이 겪어온 질곡의 삶이 투영돼 있었습니다. 작품을 돌아보는 동안 저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울컥해졌지요. 너무도 어려웠던 시절,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오직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젊었던 때의 얼굴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불현듯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형편이 나아진 맛도 제대로 못 보고 예순둘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로 남아 아버지 몫까지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지요.
글을 모르고 살아온 어르신들이 의외로 적지 않았지요. 또한, 의외로 그 어르신들은 만학 중에서도 만학이었는데도 예상보다 글을 빨리 깨우쳤습니다. 과연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과학적인 글자가 한글이란 것을 알았지요. 어르신들은 ‘나도 쓰고 읽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셨습니다.
“은행에 가면 이름도 못 쓰냐고 아가씨가 눈을 흘겼어요. 아들이 군에서 보낸 편지를 읽지 못한 채 40년을 장롱 안에 모셔놓았습니다. 난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으니까. 우리 동네에 ‘한글교실’이 열리던 날 떨리는 마음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이미 머리도 굳었고 손도 굳었어요. 눈도 귀도 어둡고요. 선생님이 암만 가르쳐주어도 오른쪽 귀로 들은 게 어느새 왼쪽 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견디면서 나를 닮은 몽당연필로 글자를 그렸어요. 내 이름 석 자와 자식들 이름도 그렸지요, 글씨를 썼다기보다는 그렸다는 게 맞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떠듬떠듬 읽었어요.”
“글자를 배우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시도 쓸 줄 아는 시인이라고 남들이 그래요. 여자는 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고 부지깽이 들고 말리던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공부하는 나를 보고 하늘나라 엄마도 기뻐하겠죠. 내 나이 팔순, 이제야 내 인생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글자로 인생을 다시 시작했어요. 평생 글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나마 한글을 배우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어느 어머니의 사연이 생각납니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아들을 키운 그 어머니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아들이 실수로 수감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몇 차례 면회하러 갔는데, 아들은 연로한 어머니가 안쓰러워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글을 배우던 어머니는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 아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고, 편지를 받은 아들은 통곡했지요.
사는 게 버거웁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으나 자식을 위해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우며 살아온 분들이 어르신 세대입니다. 그러느라 노후(老後)준비를 할 생각도 없었고, 준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자식을 위해 온전히 희생했으니 남은 게 있을 리 없지요. 그런데 누군가의 어버이인 어르신들을 제대로 봉양하기는커녕 외면하니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존재가 어버이인데, 어르신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인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어르신을 위한 복지 대책 등의 정책은 갈수록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입니다. 안 될 일입니다.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되지요. ‘글 모르는 게 죄인 줄 알았다’는 글귀가 머리에 맴돕니다. 글을 모르는 게 죄라니요. 오로지 먹고사는 게 우선인지라 글을 배울 수가 없었던 어르신의 삶을 모르는 자식들이 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