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정동길 근처에 있다. 점심식사를 마치면 정동길을 자주 걸었다. 날이 따듯할 때 정동길을 산책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10년이 넘었다. 한 군데서 근무하면서 정동길을 벗 삼아 오며 가며 한지도 많은 세월이 지났다. 오랜 기간 자주 지나다녔기에 가게 이름만 들어도 대충 위치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며칠 전, 회사에서 운영하는 문화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동길 주변 문화재, 건축물에 대한 역사와 상식이 풍부하신 분이 사내 직원들과 함께 정동길을 산책하며 문화 해설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동길을 걷다 보면 국립정동극장이라는 곳을 볼 수 있다. 국립정동극장 왼쪽 편에 작은 길이 있는데, 점심시간이면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정동집'이라는 추어탕 가게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다.
평소 국립정동극장을 지나치기도 했고 '정동집'이라는 추어탕 가게에서 밥을 먹은 적도 있다. 그래서 그 주변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문화산책 프로그램에서 '중명전'을 소개해주는 순간, 그동안 내가 눈뜬장님으로 지내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국립정동극장 왼쪽에 난 작은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니 '중명전'이라는 곳이 나타났다. 중명전은 대한제국 고종황제 시절, 1905년 11월 18일 새벽에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라고 한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중략)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정동극장이 있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명전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중명전 1층 왼쪽에 위치한 방에서 1905년 11월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고 한다. 중명전 앞에 무장 인력들이 있는 상황에서 을사오적을 비롯한 대한제국 대신들과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 을사늑약 강제 체결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국립정동극장 맞은편에는 정동제일교회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앞 사거리 중심부에 위치한 교회다. 문화산책을 하며 해설해 주시는 분 말씀에 따르면, 1919년 3.1 운동 당시 정동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에서 3.1. 운동에 쓰이는 유인물을 등사기로 인쇄하여 배부했다고 한다. 파이프오르간은 2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몰래 유인물을 만든 것이다. 또한 1920년 9월 유관순 열사께서 서대문형무소에서 돌아가셨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돌려받아 장례를 치른 곳이 정동제일교회라고 한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 주변에 이토록 사연 많은 유적지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모르고 지내도 큰 불편함이 없었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번 문화산책에 참여하며 짧은 구간이지만 장님이 10년만에 눈을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동길의 작은 비석을 봐도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다면, 이제 비석에 쓰인 글을 읽으면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떠오를 것 같다.
문화해설을 하며 후배 직원들에게 재능을 기부해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든다. 다양한 스토리를 알기에 유적지/건축물을 넓게 이해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그 선배님이 참 부럽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내 주변부터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