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빚으며

만둣집 이야기

by 혜복

컴퍼스로 둥그렇게 원을 그린 후 케이크라도 자르듯 시간표를 배분해 놓으면 절반은 성공이었다. 잠자는 시간과 공부 시간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까지 세심히 분할하면 뿌듯한 생활계획표가 완성되었다. 내가 그린 계획표가 낯설어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생활이 멈추었던 건 아니었다. 누구나 계획대로의 삶, 구획 지어진 생을 사는 건 아니다.

만두를 배워 분점을 낸 게 2019년 가을이었다. 살던 자리를 옮겨야 했던 상황은 안개 그 자체였고, 안 해봤던 일들에 덤벼들어야 하는 생소함은 날카롭기만 했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고, 부딪히다 보면 나아지리라는 대책 없는 긍정을 무턱대고 믿었다. 석 달 후면 세상을 뒤덮을 불길한 장막(코로나 19)을 예견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했던 나는 지극히도 평범한, 이 시대의 중년이었다.


삼국시대에 남만을 징벌하고 오던 제갈량이 심한 풍랑을 만났다. 마흔아홉 명의 머리를 놓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야만 한다는 말에, 밀가루로 사람 머리 모양의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니 거짓말처럼 풍랑이 잠잠해졌다. 이때 나온 이름이 만두다. 속일 만(瞞)과 음이 같은 만(饅)을 빌려 饅頭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려 충혜왕 4년 어떤 이는 궁궐 부엌에 들어가 만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우리나라 만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란 걸 보면 지금과는 급이 다른 특별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하다는 것은 좋은 것인가? 어디서든 아무 때나 접할 수 있는 대중성이 곧 생명력이 되는 경우가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없는 듯 잊은 채 살다가도 우연히 마주치면 왠지 더 반가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만두도 그렇다. 무시로 먹을 수 있는 평범함이 망설임을 덜어주면서도 특별한 음식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뭘까.

외가에 가면 소쿠리 가득 쪄 주시던 만두마다 따사로움이 담겨 있어 씹을 때마다 사랑이 육즙처럼 고이곤 했다. 외할머니 정을 많이 받고 자란 나는 아직도 그 만두의 온기가 가끔 생각난다. 엄마랑 동생들과 둘러앉아 빚던, 모양 제각각의 만두는 서서히 소반의 꽃무늬를 잠식했고, 슬쩍슬쩍 퍼먹던 만두소 맛은 그 시절 시린 겨울만큼이나 얼큰하고 찝찔했으며 그리고 고소했다. 끓는 기름에서 노릇노릇할 때 건져, 먹다 보면 입천장이 들고 일어나던 중앙시장 튀김만두가 수십 년 전 친구 얼굴을 소환하는 걸 보면 만두는 바로 추억이다. 한 입 베어 우물거리는 순간 물큰 터지며 씹히는 그리움 주머니다.

빚을 때마다 실감하는 것이 만두는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특히나 소를 만드는 일이 그렇다. 여러 재료를 잘게 다져 준비하는 일은 늘 더디다. 있는 대로 물기를 짜서 갖은양념을 넣어 골고루 버무리는 일은 언제나 신중하고 공평해야만 한다.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치댄 다음 얇고 널따랗게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자른다. 한 장 한 장 만두피를 떼어낼 때면 어릴 적 종이 딱지를 떼어내던 기분만큼이나 묘한 만족감이 번진다.

만두를 빚는다는 건 즐거우면서도 고독한 일이다. 삿된 잡념은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게 최우선으로 할 일이다. 집중해서 뜨는 만두소 첫술은 그렇게 몇 시간이고 나를 다스린다. 수북이 쌓인 만두소는 아주 서서히 한 술씩 줄어가지만 그 한 숟갈 한 숟갈에 구릉이 허물어지고 기어이 대야의 바닥은 드러나고야 만다. 매번 찾아오는 이 경험에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진리를 백번이고 수긍한다. 뿐인가. 소가 가득 담긴 대야를 야금야금 비우는 지극히도 사소한 동작이 없다면 만두는 영영 완성되지 못한다. 무언가를 비운다는 건 또 다른 채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만두를 빚을 때면 가끔 실감한다. 알알이 만두를 빚는 일은 경건하게 자신을 낮추는 일이기도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두를 먹을 때면 기꺼이 감사해한다.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들이 만나 어우러지는 오묘한 조화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소박하다면 소박한 음식인 만두를 빚을 때면 한 사람 한 사람 누군가를 생각하게 된다. 소식을 몰라 그리운 사람, 연락을 못 해도 왠지 옆에 있는 듯한 사람, 겨울이면 더 걱정되는 사람도 머릿속에 오래 머물곤 한다. 모두 잘 있기를, 다시 만날 때까지 천천히 아껴가며 저마다의 삶을 사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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