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시간을 헤아려 볼 생각은 안 했다. 책꽂이 구석에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키던 것에 얼마 전 손이 닿았고 호기심에서 몇 장 들췄을 뿐이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청소년기의 어느 신중했던 날, 모아뒀던 편지를 네 권으로 나눠 매듭진 기준은 순전히 상대에 대한 느낌의 분류였다. 하루하루가 모여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차례 집을 옮겨 다녀야 했는데 내 발자취마다 용케도 따라온 꾸러미였다. 첫 장을 펼쳐보니 능청맞을 만큼 멀쩡해 내심 놀랐다. 서로 다른 부제를 붙인 네 권의 편지 책을 훑어보며 그날만큼은 한증막 같은 더위를 말끔히 잊었다. 뭐든지 즉각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소통이 당연한 요즘 청소년들은 편지로 이어지던 시절을 얼마나 이해할까.
읽다 보니 재미있는 게, 나를 좋아한다고 소문을 내고는 시집을 베껴 편지를 보내오던 남학생이, 장가를 남들보다 일찍 가 여럿의 아이를 낳아 잘살고 있는 게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우물처럼 그윽한 눈빛에 빨려들까 겁나던, 철학에 조예 깊고 회화(繪畫)에 재능 있던 친구가 무슨 일인지 범죄자가 되어 그 추억이 안타까웠다. ‘너는 글을 쓰라.’며 좋은 영향을 줬던 옆집 언니가 암담하던 현실을 내게 토로했던 편지를 읽으며 뒤늦게 그의 고통이 전이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살아왔구나.’ ‘이런 찰나들이 소실되기도 하고, 쌓여 굳어지기도 하며 차근차근 삶으로 자리 잡은 거구나.’라는 생각에 지금은 사는 곳조차 모르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실물인 듯 다가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러다 한 사람의 편지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때 나는 무신경했는데 그는 나름 진지했나 보다. 봉사단체 행사 마지막에 둥그렇게 둘러선 다음 종이컵에 끼운 양초에 촛불을 붙여주는 순서가 있었다. 양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이 날 리 없다. 누군가 내 심지에 불을 달여 줬듯이 나도 옆 사람에게 촛불을 붙여줬는데, 바로 그 남학생이라고 했다. 음악도 고요히 흐르겠다, 누군가 밝혀준 촛불로 어둠 속 시야가 온화해지던 순간 특별한 의미를 느꼈다는 순진무구한 소년이었다. 아무튼 그랬던 그가 어찌어찌 내 주소를 알아내서 편지를 보낸다고 적혀있었다. 빙석(氷石) 같은 순수가 하도 명징해 읽기를 멈출 도리가 없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보낸 서신을 읽으며 내가 한참 동안 답장을 안 했다는 것도, 그의 서체가 보기 좋다는 것도,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웠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슬 머금은 꽃망울처럼 꿈으로만 부풀던 시기여서였는지 호감은커녕 그에게는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았고 오던 편지는 때가 되어 시들해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편지를 뒤늦게 다시 읽으며 그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길에서 이미 마주쳤어도, 언제고 마주쳐도 모를 거면서 말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기도 쓰기도 하며 기다림을 반복하던 그 시절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싱그럽던 나날이었다. 지금 형편이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코로나 터널 속이라 그런지 한 장 한 장 읽을수록 더욱 그 시절이 생생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동생과 통화하며 편지 책 얘기를 했더니 아직도 그런 걸 간직하고 있었냐며 몹시 놀랐다. 촛불 한번 밝혀 줬을 뿐인데 편지를 열심히 보냈던 친구 글이 새롭게 읽혔다 하니, 잠시 머뭇대다가 혹시 이름이 아무개 아니고 묻는데 비슷하긴 해도 정확하진 않았다. 바르게 일러주니 맞는다며 자신이 하도 읽어서 아직도 머릿속에 그 이름이 있는 거라며 박장대소를 했다. 이어 말하길, 어느 날부터인가 그 사람에게서 편지가 자주 오더란다. 편지 주인 귀가하려면 아직 멀었고 궁금증 참는 게 고역이었던 아버지가 이쑤시개로 정교하게 여며 살살 뜯어 읽어보시고는 “야, 별 내용도 아니다.”며 싱겁게 웃으셨다고 한다. 그렇게만 끝났다면 중학생이던 동생이 과연 그 이름을 기억할까. 일차 검열을 마친 아버지가 감쪽같이 봉해놓으면 다음 독자는 자기였다고 한다. 그 시절에 마땅히 읽을거리도 변변찮았는데 호기심과 즐거움을 동봉해 오는 그의 편지가 고맙기까지 했단다. 네 명의 동생을 둔 나는 분명 다른 독자가 몇은 더 있었던 거로 확신하고야 만다. 식구들이 읽은 후 온갖 섬세함을 발휘해 다시 붙여놓은 걸 마지막으로 읽었던 나는 인연의 필적을 어쩌지 못해 이때껏 보관해 온 것이다. 묻힐 뻔했는데 밝혀진 비밀 덕분에 한바탕 웃었다. 배가 당길 만큼 깔깔대던 자매와의 수다 도중 아버지의 젊은 날이 떠올라선 젖은 눈으로 웃는다. 사춘기 시절 남달리 예민했던 나를 속으로 걱정하시던 아버지의 염려가 오롯이 느껴진다. 당시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긴 딸은, 가고 안 계신 당신이 그리워 마음 한쪽이 저며 온다.
이쯤 해서 또 하나의 숙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그동안 미뤄뒀던 것일 수도 있겠다. 크고 작은 인연의 증거들을 계속 보관하는 게 옳은가? 이제라도 차츰 정리해야 하는가? 결정권자는 ‘나’ 임을 알기에 종잇장이 품은 오랜 향은 애틋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