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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Apr 09. 2024

어린 시절 기억

  5학년 남학생이 울면서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두 팔로 감싸줬더니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슬피 운다.

이유는 미술시간에 세월호에 대한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수행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자기는 열심히 그려서 거의 마무리가 다되어갈 때쯤 다른 아이들이 도와준 아이가 선생님한테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림을 다 찢어버리고 반아이들 모두 다시 그리라고 했는데  본인은 혼자서 다 그렸는데 선생님이 자기 그림까지 안된다고 뺏고 반학생 모두 다시 그리라고 해서 억울해서 울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셨으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났는데 내 머릿속에 옛날 초등학교 1학년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미술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려오는 숙제였다.

나는 미술책을 가지고 사촌오빠한테 그림을 그려달라고 갔다.

그런데 오빠가 그려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다시 그려가지고 학교에 갔다.

다음날 학급게시판에 내 그림과 친구의 그림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내 그림은 '우'고 나보다 못 그린 친구그림은 '수'였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가시는 선생님을 따라가서 내가 그림을 더 잘 그렸는데 왜 친구그림이 수냐고 여쭤봤다. 선생님께서는

"너는 누가 그려줬고, 친구는 친구가 그렸기 때문에 너는 '우'고 친구는 '수'야"

라고 하셨다.

선생님께 그 그림은 내가 그린 그림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의 그 아픔을 아직도 가슴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4학년 때 운동장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이 그림 네가 그린 거니?"

하고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림 참 잘 그리네" 하고 지나가셨다.

그 뒤 내 그림이 한 번도 학급게시판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그때는 잘 그리는 사람의 그림만 게시판에 붙이던 시기였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화가가 나의 꿈이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담임이 꿈에 대해 적어내라고 했을 때 나는 화가라고 써냈다. 그리고 미술선생님께 소개해주셨다. 그 미술선생님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스승과 제가 사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불조심포스터 그리기에서 시장상인 대상을 받았다.

내 그림은 시내 가장 번화가인 사거리 게시판에 붙었다. 언니가 엄마한테 "저그림이 윤이 그림이야" 했을 때 엄마의 가슴은 불이 붙는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고 하셨다.

그 후 그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나는 화가의 길은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지금은 그림을 잘 그리는 정도로 살고 싶다.

울고 있던 아이에게 1학년때 그림 이야기를 해주며 억울한 것은 이런 거야 했더니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 듯 방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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