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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터진 서툰 호주 적응기, 마음의 온기

by 영이

2016.12.28.


설움 터진 서툰 호주 적응기


바깥으로 나오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앞의 일을 떠올려봐도 도통 어디에다 탓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위선, 가식 이런 것을 싫어한다. 가만히 있어도 그대로 드러날 것을 아닌 체하는 게 나로서는 힘든데, 또 보면 그걸 잘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여기서 위선은 착함의 대상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향한 사람이다. 자기는 괜찮고, 남은 안 되는 이상한 논리. 그런데 자신은 떳떳하다. 착하니까. 애덤 그랜트의 Giver, Taker가 떠올랐다. 오늘 처음 봤지만 아파트의 그 남자는 Taker가 분명해 보였다. 아니다, 그러고 보면 바라는 것만 많은 내가 Taker인가?


생각이 멈추고 나니 그제야 브리즈번 도착 후에 고향집에 연락을 못 드린 게 생각나서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 서른이 되어도 엄마에겐 뭍에 내놓은 아이인지, '잘 도착했고? 사람들은 괜찮고?' 같은 질문을 하셔서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억지로 꾹꾹 누른 채 '너무너무 잘 도착했고, 숙소도 사람들도 너무 좋다'며 너르세를 떨었다. 우는 소리는 안 했지만 살짝 잠긴 목소리를 알아채신 건지 엄마는 몇 마디 해주시더니 끊긴 건지 끊으신 건지 통화가 끝이 났다.


"사는 게 다 마음 같지가 않지?
그래도 큰맘 먹고 간만큼 잘하고,
잘 지내고, 다음에 연락하고!"

전화는 끊어졌지만 알았다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폰을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놈에 호주…. 한숨을 깊게 내쉬고 하늘을 보니 오늘따라 하늘도 참 청명해서 하늘 탓도 못하게 됐다. 호주를 온 게 잘못이었을까? 미운 호주, 남들처럼 조금 더 쉽게 가주면 안 되냐는 푸념을 섞어보지만, 고작 이런 것에도 흔들리느냐는 생각이 마주치고 나니 생각이 잠시 멈춰 섰다.


마음의 온기를 내어준다는 것


"동산아, 전화 돼?"

브리즈번, 아니 호주에서 유일하게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 동산이. 09년 겨울 병원 실습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동갑내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방에 갔더니 그런 놈이 있었고,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그래놓고 자기가 더 떠들었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요 몇 시간 쌓인 울분을 압축해서 친구에게 전했다. 그리고 친구의 한 마디,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



자기 살기도 바쁠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그렇게 해댔는데 바라기는 했어도 돌아온 반응에 내심 놀랐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는 '내가 빚을 지면 졌지, 내가 내어준 적이 없는데…'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시답잖은 질문 세례도 그러했고, 도착하고 나서 일이 생길 때마다 이어온 투정도 눈에 밟혔다. 그런 과정을 다 겪고도 보통의 경우에는 대충 듣거나 따끔한 한 마디가 날아오기 십상인데, 이렇게 뜨뜻한 공감 한 마디를 해주다니…. 대인배 동산이에게 너무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게 공감이구나!'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공감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인정해 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위로가 되다니…. 말로는 알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행동인데 눈앞에 마주하고 나니 평소에 경청은커녕 곧장 달려들어 치고받고 하는 내 모습이 본의 아니게 찔리기도 했다.

공감은 무엇일까? 그 사람과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것, 조금 더 차가워졌을 상대방에게 내 마음의 온기를 내어준다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문득 나의 개똥철학이 발동되었다.


공감, 마음의 온도, 마음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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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


하소연을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뭔가 남은 느낌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손해 보고 싶진 않지만, 이미 입주하면서 돈은 건네었으니 얼마라도 떼일 건 당연했고, 돈 때문이라도 버텨보자는 생각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 서러웠던 서울 자취생활이 떠오르고 나니 나가는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었다. 그러던 찰나 아까 동산이에게 들었던 협상론도 떠올랐다. 혹시 모르니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그 말. 장사치겠거니 생각해서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나니 처음엔 안 됐다고 완강하셨다가 이내 차선책을 제안해 주셨다. 자기가 인근에 다른 숙소도 렌트하고 있는데 거기로 가는 건 어떻겠냐고 말이다. 동네 이름이 특이했는데 생각해 보니 동산이가 그 근처에 산다고 들었던 거 같았다. 돈 손해 볼 건 없고 앞으로 지낼 곳도 정했고, 친구와도 더 가까워지다니.. 쥐구멍에도 볕뜰날 있다더니 이런 게 전화위복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 나갈 때만 해도 세상의 오만상과 오만 짐을 둘러멘 기분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다 털어낸 듯 훨씬 더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아까의 Taker들은 이미 야간 청소하러 가버렸고, 침대에 오르고 나니 그제야 오늘 지역이동을 했던 게 실감이 나더니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첫인상 별로였던 아파트여, 내일이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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