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04]보틀팩토리정다운 대표
신촌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연희동의 안쪽 골목에 위치한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는 조금 특별합니다. 모든 음료는 빨대 없이 잔에 담겨 나오고, 빨대가 필요하면 재사용이 가능한 다회용 빨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음료를 밖으로 가져가려면 본인의 텀블러를 가져오거나, 카페의 컵을 빌려갔다가 다시 반납을 하러 와야 합니다. 불편하겠다고요? 글쎄요 :-)
동네 사람들에게는 슬리퍼를 끌고 편하게 올 수 있는 곳, 주인을 끌고 온 강아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요. 테이크 아웃을 하는 손님들보다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카페 옆에 있는 지하로 내려가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세제가 떨어지면 리필을 할 수 있고, 설거지 비누부터 천주머니까지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데려올 수 있어요. 저는 이 곳에 갈 때마다 이사를 한다면 꼭 '연희동'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보틀팩토리의 정다운 대표를 만나 보았습니다.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보틀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보틀팩토리는 어떤 곳인가요?
‘지속 가능한 일상 가이드 플랫폼’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처음엔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을 줄이고 싶어서 다회용 컵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일회용품을 안 쓰는 카페가 가능한지 실험을 하고 싶어서 공간을 마련했어요. ‘일회용 컵 없는 카페’, ‘우리 동네 세척소’라는 슬로건을 걸고 연희동에 보틀팩토리라는 카페를 열었습니다. 카페를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자리 잡는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카페는 얼마 전 ‘보틀라운지’로 이름을 바꾸어 분리했고, ‘보틀팩토리’는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의 일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 제공에 집중하고 있어요.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고 싶었던 계기가 있었다면요?
제가 잠시 방심하면 카페에서 마실 건데도 일회용 컵에 음료가 나오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그러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수거되는 과정을 따라가 봤어요. 그 많은 컵들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일회용 컵이 없는 카페는 불가능할까?’ 질문하게 되었어요.
* 참고 영상: 쓰레기 여행 - 테이크아웃 컵을 따라서
https://www.youtube.com/watch?v=wriD5hBciTA
테이크아웃을 하면 할인을 해주는 세상에 돈을 더 내라고요?
보틀팩토리의 시작이 궁금해요.
‘프로젝트 하다’라는 작업실에서 아침 시간 팝업으로 실험한 ‘보틀카페’가 ‘보틀팩토리’의 시작이었어요. 보틀카페는 유리병에 음료를 담아주는 카페였어요. 그때가 2016년이었으니까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이 당연하던 때였어요. 보통 테이크 아웃을 하면 할인을 해주는데 보증금으로 1천 원을 더 받고 병이 회수되면 돈을 돌려드렸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불만을 제기하는 분이 한 분도 없는 거예요. 까먹고 안 돌려줄지언정 왜 이렇게 하냐는 말을 하는 분은 없었고 “맞아요. 일회용 컵 사용이 심각하죠. 저도 사용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요.”라며 공감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반응들이 힘이 되셨겠어요.
사람들이 일회용 컵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 같지만 다른 대안이 없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불편함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요.
그때 ‘보틀카페 같은 곳이 많아진다면? 여기서 빌리고 저기서 반납할 수 있다면? 그러면 병 반납이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틀카페’끼리 컵을 공유하고, 컵을 세척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볼까?
‘보틀카페’를 실험으로 운영해본 뒤, 소비자에게는 가입된 카페에서 쉽게 컵을 대여하고 반납하는 서비스를, 카페에는 컵 세척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셉트로 ‘보틀팩토리’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 서비스를 생각한 다음에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잘 안 먹혔어요.(웃음)
“테이크아웃 컵을 안 쓰고 카페 운영을 어떻게 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안 돼요.”
제가 카페를 운영해본 적이 없으니 안 된다는 말만 계속 들었을 때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카페를 오픈하고 자리 잡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셨어요?
공사하고 자리 잡는 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제가 목표로 했던 서비스는 오히려 많이 늦춰졌어요.
연희동이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제가 처음 독립해서 살았던 곳이 바로 길 건너 동네였어요. 연남동은 많이 알려져 있었고, 연희동 메인 거리는 비싸서 근처를 찾아보던 중에 마당도 쓸 수 있는 이곳을 보게 되었어요. 이상하게 여기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있는 아파트 단지가 생기지도 않았을 때였고, 상권이라고는 갖춰져있지 않은 곳이었거든요. 나와서 골목을 걷다 보니 오래된 참기름집이 있었고 반찬 가게도 있더라고요. 이 곳에 카페를 열면 진짜 동네 사람들이 걸어서 편하게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연희동은 올 때마다 정겨워요. 동네 사람들끼리 커뮤니티가 잘 형성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옛날 동네의 감성을 간직한, 차가운 서울과 반대되는 따뜻함 같은 거요.
맞아요. 보틀팩토리를 시작할 때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오는 곳, 힙한 동네에 놀러 가서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의 그림을 그렸어요. 근데 상권이 없으니까 처음엔 정말 힘들긴 했어요. (웃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환경운동가는 아니에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굳이 꼽으라면 집안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특히 어머니가 물건을 잘 안 버리시고 계속 쓰임을 찾으셨어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쓸데없이 버려지거나 낭비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큰 기업에 들어가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면지가 정말 많이 버려졌거든요. 한 번 시안을 낼 때마다 빠닥빠닥한 새 종이에 시안을 뽑고 또 뽑고 그 종이는 금세 버려졌어요. 이면지 트레이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보고용으로는 이면지를 쓸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프린터가 두 개니 하나는 이면지 전용 프린터로, 하나는 보고용 프린터로 사용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져 줬어요.
다운 님은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곳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문제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해결하고 싶다. 어떻게 하지?’ 생각해요. 그다음엔 ‘그러면 이렇게 해볼까?’ 시도를 해요. 결국에 그런 시도들이 커져 실험이 되고, 실제로 구현되기도 해요. 비단 환경만의 문제는 아니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요.
보통은 불편해도 거기에서 끝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 같은 사람?(웃음) 계속 움직일 수 있는 동력 같은 게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확실한 건 문제를 해결하면서 재미를 느껴요. 선한 영향력을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문제가 저에게 와 닿고 공감이 되면 해요. 너무 궁금한 거예요. 해결하고 싶고, 이걸 해결하면 다음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어요. 처음부터 ‘일회용 컵을 전혀 안 쓰는 카페를 차려야지’하면 되게 어렵잖아요. 작게 실험하고, 방법을 찾고, 실행한다. 그게 지금의 보틀팩토리가 되었어요.
‘일회용 컵 없는 카페’를 처음 만들었을 때, 우선순위를 두었던 것이 있나요?
‘일회용 컵과 빨대를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테이크아웃을 한다는 것이 무조건 일회용 컵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플라스틱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다 바꿀 수는 없더라도 보틀팩토리 공간에서만큼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안 쓰는 텀블러를 가져다 놨고, 그러다가 ‘보틀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옛날 도서관처럼 대출 카드를 만들어 테이크아웃을 하는 손님들에게 텀블러를 대여해드렸어요.
보틀팩토리 카페(보틀라운지)를 시작으로 주변 카페들도 동참했다고 들었어요.
다른 카페들과 함께 다회용 컵을 공유하려면 여러 인프라를 갖춰야 했는데 처음부터 그걸 다 갖추기는 어려웠어요. 그래도 지역 내 카페들과 시작을 해보고 싶은데 무턱대고 저희처럼 일회용 컵과 빨대를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하기는 어려웠고요. 그래서 ‘매일 해보자’는 말 대신 ‘딱, 일주일만 써보지 말자’고 제안을 드렸어요. 그렇게 저희가 좋아했던 일곱 개의 카페에서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 슬로건을 걸고 ‘유어보틀위크’를 시작했어요.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저는 텀블러를 잘 못 챙기는 사람이에요. 전날에 사용한 것을 씻지 않았거나, 깜박하고 집에 두고 나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차라리 사람들에게 텀블러를 일주일 동안 나눠주고 써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아?”라고 말하는 분의 의견에 공감하지 못했어요.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거든요.
유어보틀위크를 진행할 때에는 카페와 소비자 양쪽 모두 일회용품을 안 쓰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카페의 환경이 바뀌어있다면 텀블러를 준비하지 않아도,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러 가도 변화를 경험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 카페 사장님이 “대부분 빨대 달라고 할걸? 여성분들은 립스틱이 지워지는 게 싫어서 빨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라고 하셨어요. 근데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거잖아요. 유어보틀위크 기간 동안엔 필수로 제공되던 빨대 대신 메모가 나갔어요.
“빨대 없이 드셔 보는 건 어떠세요? 만약에 빨대가 필요하시면 카운터에 비치된 다회용 빨대를 써주세요.”
일주일 뒤에 그 카페는 다회용 빨대로 바꾸셨어요. 빨대 달라고 하신 분들이 거의 없었다는 거예요. 일단 시작이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해요.
‘안 될 거야’에서 ‘해보니까 되네?’가 되었네요.
일주일 간 ‘유어보틀위크’가 진행되고 기사가 나갔는데 그런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일주일? 장난하냐? 일주일 가지고 뭘 할 건데?’(웃음)
그럼 저는 ‘아닌데? 일주일이어도 바뀔 수 있는데?’ 해요.
오랜 시간이 주어진다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몇 년을 옆에서 잔소리해도 감흥이 없으면 안 되는 거고, 잠깐 들린 카페에서 쪽지를 보고 빨대 없이 커피를 마셔봤는데 어? 괜찮네? 하면 그다음부터 그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거예요.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가게든, 소비자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변화가 일어났고요.
‘유어보틀위크’는 그 뒤에도 매해 진행되고 있다면서요?
첫 해(2018년) 슬로건은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이었어요. 두 번째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변화’, 세 번째는 ‘버릴 것 없이 채우는 일상’으로 진행했어요.
특히 두 번째 슬로건이 저한테는 중요했어요. 두 번째 해에는 카페에서 동네 가게로 확장했고, 기간도 2주로 늘렸어요. 동네 사장님들께 사람들이 용기를 가져와 포장하면 리플릿에 도장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드렸는데 어묵집 사장님이 “그렇게 할게. 근데 누가 용기를 가져오겠어?” 그런데 신기하게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방문했던 거예요. 오히려 가게 매출도 늘었고요.
사실 가게가 바뀌는 건 쉽지 않아요. 왜냐면 조금 더 불편한 방식으로 가는 거니까요. 반찬 가게의 경우 “포장 안 해놓으면 손님들이 싫어해”라고 말하시는데 “그걸 원하지 않는 손님들도 많아요”라고 말씀드려요. 사실 안 해본 거잖아요. 포장이 없는 게 대세가 된다면 가게는 바뀔 수 있거든요. 유어보틀위크 기간 동안 용기를 들고 방문 가능한 가게 리스트를 올렸고, 동네 분들이 많이 방문해주셨어요. 카페에서 가게까지 경험을 하신 거예요. '아, 이런 걸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구나!'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거죠.
그 무렵, 채우장이 열렸죠?
동네의 소규모 생산자들의 물건을 포장 없이 판매하고, 소비자가 자기 용기를 가져와야 살 수 있는 장터를 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이 채우장이 됐어요. ‘버릴 것 없이 채우는 장터’.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안 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겠죠?(웃음)
벤치마킹할만한 선례도 없어서 가능성이 검증된 것이 아니었어요. 친구한테 말하니 클릭만 하면 집 앞으로 온갖 음식이 배송되어 오는 시대에 자기가 용기를 챙겨야 살 수 있는 장터를 좋아할까 걱정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그래 안 되겠지?’가 아니라, ‘그럼 어떻게 좋아하게 만들지?’ 고민했어요.
마트의 물건은 이미 포장되어 있으니 참기름 가게, 방앗간, 원두 가게 등 동네 소규모 생산자 분들을 섭외했어요. 그런데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오는 거예요. 처음에는 손님들이 불편하겠다 생각했는데, 거꾸로 보면 손님이 용기를 가져오지 않으면 생산자 분들이 팔지 못하는 거니까요. 위험한 장터였어요. 이미 무엇을 파는지 확인하고, 마음의 결정을 하고, 용기를 가져와야지만 살 수 있는 위험하고 어려운 장터. 지갑만 들고 오는 손님이 없도록 한 달 전부터 홍보물을 올렸어요. 거의 소비자 교육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경성참기름 은 3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곳이에요. 원래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문 닫으시려는 걸 안타깝게 생각한 지금의 주인 분들이(동네 주민이었던) 참기름 짜는 법을 배워 이어가고 계세요. 깨를 씻고 볶고 짜는 과정은 손이 많이 가고 힘든 과정이라고 해요. 우리는 우리의 먹거리 재료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가볍게 여긴다는 그런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참기름 한 병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그 참기름! 만나러 오세요.
세제가 되는 열매, 소프넛을 담아가는 방법-
천주머니에 담아도 되고 보관할 용기를 바로 가져오셔도 되고요. 여러 용기를 가져오는 건 부피와 무게 때문에 힘들다면 천주머니나 지퍼백 여러 개를 챙겨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채우장을 함께 준비하는 이웃 카페 '샘'의 더치원액을 구입할 수 있어요~! 채우장에서 더치원액 구입하려면? 빈 병을 씻고 열탕 소독해 가져와주세요. 더치원액을 샀던 병, 다른 용도로 생긴 유리병들 집에 참 많죠. 버리지 말고 모아두었다 채우장에서 사용해주세요!
이 가게는 어떤 가게고, 그런 가게에서 파는 제품을 사려면 이런 준비물을 가져와야 한다. 그렇게 준비해서 2019년에 4월, 처음 채우장을 열었어요. 어떤 제품은 병까지 열탕 소독을 해와야 살 수 있는 불편한 장이었죠. 감사하게도 첫 채우장부터 손님이 많았고 다들 준비물을 잘 챙겨 와 주셨어요. 코로나로 잠시 쉬고 있지만, 매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채우장을 열고 있어요. 처음에는 1층 카페의 마당 공간에서 시작을 했는데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카페 안쪽까지 쓰다가, 거기도 부족해져서 지하 전체까지 진행하고 있어요.
채우장이 잘 되는 이유는 뭘까요?
처음에는 준비물을 알려드렸는데, 다음부터는 잘 챙겨 오시더라고요. 나중에는 줄을 서고 몇 시간 만에 물건이 완판 되는 장터가 됐어요. 불편하게 해 놨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오지? 신기했어요. 방문자의 포스팅을 찾아봤는데 와주신 분, 판매자 분들 모두 많은 걸 느끼고 계시더라고요. 다른 장터와는 다르게 교감을 하는 장터였대요. 저도 채우장을 할 때마다 오신 분들에게 감동을 받아요. 그리고 채우장만의 장점이 있는데 배송을 받으면 포장에, 쌓이는 쓰레기에, 분리 배출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그런 과정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찬장에 넣고 끝이거든요. 앞부분이 조금 불편할 수 있어도 뒷부분이 편한 거예요. 채우장에서 장을 보면 너무 예뻐요. 좋아하는 통을 가져가서 담아와 우리 집 식탁에 꺼냈을 때! 스티로폼에, 랩에, 봉지에 담긴 것들을 가져오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와주신 분들이 장 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계속 올려주셨고, 그걸 보는 분들이 채우장을 불편한 것이 아니라 힙하다고 생각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배달받았을 때의 스트레스는 정말 무시하지 못하죠. 뒷부분이 편하다는 말이 특히 더 와 닿아요.
채우장을 방문해주셨다가 기사를 써주신 기자분이 그런 말을 해주셨어요.
‘의외로 소비자는 준비되어 있다. 이제 판매자가 바뀌어야 한다.’
'의외로'가 중요한 부분인데 기업이나 가게들이 소비자가 편한 것만을 원할 거라고 생각하고 서비스의 초점이 그쪽으로 맞추어져 있잖아요. ‘정말 그럴까? 그렇지만은 않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과자 하나, 파 한 단까지 배송되는 시대이지만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소비자들이 많고, 이제는 판매 방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채우장을 보면서 했어요. 그전까지 혼자만의 문제의식이었다면 이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검증했던 것 같아요.
채우장은 대단한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에요. 그냥 우리 동네 물건을 팔아요. 제일 맛있는 떡이 아니라 우리 동네 골목 떡. 특별한 것이 아닌데 불편하게 통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신기해요. 다른 방식의 소비 형태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이 채우장이 열리는 지하 공간이죠?
네, 원래 이곳은 밴드 연습실이었어요. 정말 손댈 곳이 많은 공간이었는데 천천히, 조금씩, 더딘 속도로 공간을 다듬었어요. 기부받은 텀블러가 많아서 창고 겸 컵 세척소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세척소의 역할을 축소하고 사무실 겸 보틀팩토리 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주로 세탁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하실 수 있고 천주머니, 설거지 비누, 다회용 빨대 등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보실 수 있어요. 결국 ‘판매’의 형태지만 ‘제안’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대안을 알려주고,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틀 저녁은 관악기 연습실, 동네 기타 연습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웃음)
직접 제작한 컵 ‘Return Me’(리턴미)도 구매가 가능한가요?
아니요. 리턴미컵은 ‘보틀클럽’에 가입하신 분들이 사용하실 수 있는 컵이에요. 처음에는 보틀라운지 카페에서 대출카드를 작성하면 텀블러를 대여해드렸는데 지금은 저희가 제작한 리턴미컵으로 교체가 되었어요.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이 되어서 카페에 비치된 태블릿을 통해 대여하실 수 있고 미반납 시 저희가 문자를 드리고 있어요. 지금은 함께하는 카페가 10곳 정도 되는데, 보틀클럽에 가입하면 보틀클럽과 함께하는 카페 어디든 편하게 반납을 하실 수 있어요.
기부받은 텀블러도 있는데 제작을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가끔 행사를 하는 곳에 기부받은 텀블러를 대여해드렸는데 행사가 끝나면 뚜껑을 찾아 끼우는데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리더라고요. 안 쓰는 텀블러를 기부해주시니 사이즈와 형태 등이 제각각이었고요. 보틀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카페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규격화된 컵이 있어야 했어요. 최고의 기능을 가진 컵을 만들기보다는 세척하기 좋고 슬리브가 없는 형태, 뜨겁고 차가운 음료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형태여야 했어요. 100도까지 담을 수 있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에코젠’을 소재로, 표면에 단차를 줘서 뜨거운 음료를 넣더라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했어요.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는 텀블러를 들고 가는데 점심에 의도치 않게 커피숍에 가면 일회용 컵을 쓰게 되거든요.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자주 가는 커피숍에 텀블러를 맡겨놓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회사 다닐 때 저도 그랬어요. 항상 텀블러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애매했거든요. 저는 텀블러를 워낙 못 챙기는 사람이라서 텀블러가 없더라도 일회용 컵이 아닌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첫 목표가 다회용 컵 공유 서비스였고, 동네마다 세척소를 두는 것이었어요. '따릉이'를 탈 때 어디서든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것처럼, 어디서든 리턴미 컵을 빌리고 반납하면 동네 세척소에서 수거하여 세척하고 다시 배분하는 서비스를 그렸어요. 그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지금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지만 지역에서 실제로 적용해보며 발전시키고 있어요.
갑자기 연희동에 살고 싶어 지는데요.
보틀클럽은 사실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서비스예요. 의지가 없는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서비스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틀라운지는 100% 다회용 컵을 사용하지만, 다른 카페의 경우 테이크아웃 컵, 리턴미 컵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거든요.
보틀클럽에 가입할 때 별도의 가입비가 있나요?
비즈니스가 되려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가입비를 받으면 시작 자체가 어려우니까 지금은 무료로 신청하실 수 있게 해 두었어요. 4월은 시범 운영 기간인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열어두고 컵은 어떤 상태로 돌아오는지, 반납률은 어떻게 되는지, 다른 카페로 컵이 얼마나 순환되는지 유효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간으로 두고 있어요.
해외의 경우 구독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소비자에게 보증금을 받거나, 카페에 세척 비용을 받기도 해요. 해외 구독 서비스의 경우에는 정말 ‘서비스’라고 인식을 하는 거죠. 아직 우리나라에는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인식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단계예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도 보틀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사용할 의향이 있어요. 다른 곳으로의 확장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인프라 구축에 비용이 많이 들어서 지원 사업으로 걸음마를 떼고 있는 단계예요. 정말 한 걸음씩 천천히 가고 있어요. 물론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고요.
대기업에서 일할 때와 지금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나요?
3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30대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전환의 시기였달까. 갑자기 ‘대기업을 그만두고 환경운동가 같은 삶을 살 거야’ 한 것은 전혀 아니었고요. 하고 싶은 걸 조금씩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물론 수익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나죠. 오랜 시간을 예전에 벌어둔 돈으로 살기도 했고요.(웃음) 보틀라운지 카페는 2년 정도는 계속 적자였고, 컵 공유 서비스는 다 안 될 거라는 말을 하니까 힘이 많이 빠졌어요. 아직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No’에서 ‘Yes’를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번아웃이 온 적이 있나요?
구상한 것들을 빨리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고 쉽지 않다 보니 거의 주 7일을 일하고 있어요. 업무 생각만 계속하느라 쉬지 못하고 몇 년을 계속 그렇게 지냈어요. 서비스를 시작할 때 ‘어떻게 만들까?’보다는 ‘왜 해야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했어요. 플라스틱 컵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것, 일회용 컵을 안 쓰는 카페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장터를 열 수 있다는 것.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시간이 참 오래 걸렸어요. 요즘은 좀 지치기도 해요.
그동안 사람들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거네요.
스스로 경험해보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요. 직접 해보고 느끼고 바뀌게 되는 것. 그래서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거기까진 못할 것 같아' 하고 아예 안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1명의 완전한 채식주의자보다 99명의 불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낫다’는 말이 있듯 전체의 변화로 보면 불완전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텀블러를 매일 들고 다닐 수 없으니 안 할래' 보다는 일회용 컵을 하루에 3잔 사용하던 걸 2잔으로 줄이는 작은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더 궁금해져요.
구상한 서비스를 실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제로 웨이스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우리 동네만큼은 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게 가능하다면 다른 곳도 가능한 거잖아요. 생활 반경 안에서 제로 웨이스트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보고 싶어요. 세제가 떨어지면 리필하고, 카페에 가도 일회용 컵을 쓰지 않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장을 볼 수 있는 시스템. 지금은 내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것이 많은 환경이니까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이 배달되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어요.
보틀팩토리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나요?
보틀라운지를 방문한 어떤 분이 ‘가능성을 검증하는 공간’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그 말이 참 와 닿고 좋더라고요. 안 된다는 말을 그동안 많이 들었는데 하나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걸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가능성을 실험하는 곳에서, 가능성을 검증하는 곳으로의 변화. 그렇게 기억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몇 년 전, 북유럽을 여행할 때 화장실 칸마다 세면대가 비치되어 있는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세금을 이런 곳에 낭비하는구나'싶었는데 월경컵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생리대 대신에, 여성들이 월경컵을 바로 세척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시스템이었다는 것을요.
내 의지만으로 어려운 것이 많은 환경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다운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꾸 북유럽의 화장실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이 지나야 우리나라 여자 화장실 칸에도 세면대가 마련될지 아득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월경컵 사용에 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당시 사무실이 입주해있던 공유 오피스에 작은 제안을 해보았습니다. 한 칸의 화장실이라도 세면대를 비치해주면 좋겠다고요. 바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화장실 칸에 세면대가 비치되었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분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작년 한 해동안 '1년 동안 생리대 안 쓰기 프로젝트'에 성공했고, 약 400여 개의 생리대를 아낄 수 있었어요.
'의지'와 '환경'이 갖춰졌을 때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한 사람이 모여 다수가 되고, 다수가 모여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을 만드는 것은 아득한 일이지만 사실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사람, 경험해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앞에서 길을 닦아주는 사람. 다운 님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깨끗한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연희동의 제로 웨이스트 커뮤니티. 몇 년간 연희동 사람들이 함께 일군 작품은 아름답고 눈부셨습니다. 다운 님이 걸어가는 길이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기를, 무한한 '지지'와 '연대'와 '공감'과 '사랑'의 마음을 보내 봅니다.
보틀팩토리 인스타그램: @bottle_factory
기획 및 글: 라씨&리에
사진: 지노
한 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셋이 모였습니다. 간헐적으로 만나던 셋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한 달에 한 번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사적인 인터뷰의 대상은 자꾸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공간 뒤에 숨은 이야기를 자꾸 묻다 보면 공통의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느슨하고도 소중한 프로젝트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새로 시작할 용기와 영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스타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samsamsam.project